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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녕 Dec 30. 2022

슬기로운 겨울방학 생활

읽고 쓰고 생각하라

드르르륵

하이클래스 알림
금요일 방학식 후 하교(급식 없음)-화, 목 단축수업

이게 무슨 소리야, 단축 수업이라니

망했다

<어떡해 친구야 이번주 단축 수업이라 일찍 하교한대>

<뭐야 금요일 급식 없네 왜 급식을 안 해>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일찍 끝난 다잖아 난 망했어>

<아니 급식을>

지금 밥이 중요한 게 아니야 친구야, 일찍 하교한다는 뜻은 우리 망아지들이 일찍 와서 날 들들 볶을 거라는 소리라고.

어떻게 겨울방학을 잊고 있었을까

곧 두 달간의 방학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게 된 충격에 머리가 멍할 때쯤 일주일 전부터 단축수업이라는 거대한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남들은 방학 동안 체험학습을 가거나 학원의 방학 특강, 스키캠프 눈썰매장 여러 활동적이고 다양한 활동들을 한다던데 우리 아이들은 엄청난 내향인 들이라 집 밖에 나가는 순간 기력을 잃는다.

몇 번 억지로라도 끌고 여러 가지 체험을 시켜보았지만 다 연간의 경험으로 시간낭비라는 결론을 얻었다.

바깥활동 없이 그럼 이 긴 시간 동안 뭐를 한다.

곧 있으면 아이들이 올시간이고 일주일 뒤면 방학을 한다 얼른 생각해 내야 해


“우리 애들은 방학 특강 안 들어?”

“그집애들은 수학학원 어디 보낼 거야? 요즘 저 옆동네 거기 괜찮다던데”


조언의 탈을 쓴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쎄 학원이라, 애들이 원해서 간다고 하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의 사교육에 흔들려서 이것저것 시켰던 때가 있었다.

유명하다는 학원을 돌며 상담도 받고 그렇게 등록한 학원에서 두 시간 세 시간 앉아 공부하는 아이의 눈에서 빛이 꺼져가는 것을 본 뒤로 모든 공부학원을 그만두었더랬다.


“언니, 학원 다니고 싶어 하는 애들이 어디 있어요 그냥 다녀야 되니까 다니는 거죠, 안 다니면 뒤쳐져요”

그런가 억지로 라도 시켰어야 했나, 내가 너무 애를 싸고돌았나, 하긴 학원 안 다니는 애들이 없어 보이는데 우리 애들만 안 다니면 뒤쳐지겠지.

하지만 수학문제도 잘 이해 못 하는데 수학학원을 가봤자 제대로 하려나

아, 꼬리를 무는 생각 가운데 불현듯 머리를 치고 가는 어떤 생각이 있었다.




읽는 것이 지루하고 쓰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학교에서 일기 쓰기, 독서 감상문 숙제가 나올 때에는 쓰는 내내 눈물바람이었고 문제집의 지문이 조금만 길다 싶으면 읽기도 전에 질려했다.

수학문제 푸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문제를 읽는 게 문제였다.


『당신의 문해력』, 『문해력 유치원』교육프로그램에서는 문해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프로그램들이 나왔다. 시중에는 문해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들이 넘쳐났다.

알아요 안다고요, 하지만 안 되는걸 어찌하나요

이론과 실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으니, 그 벽을 넘기가 정말 힘들었다.


삶에 있어 방향을 잃었을 때에는 책이 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그곳에 답이 있나니

글이 어려우면 글공부를 하면 되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갔다. 아이들용 글쓰기 책을 쭉 훑어본다.

재미있게 글을 써야 하니 자유글 한 권 담고, 표현력도 부족하니 표현력교재 담고, 문장도 중요하지 하면서 또 담고 담다 보니 너무 많은가 싶었지만 일단 주문했다.


내돈내산 방학 교재


도서관에 가서 가방 하나 가득 책을 빌려왔다.

책장 가득 꽂혀있는 책을 보니 모두 내 것인 것 마냥 뿌듯하고 행복했다.

너희들도 행복해했으면 좋겠는데


이곳이 보물창고

준비가  끝나고 나니 더럭 겁이 났다.

시간 낭비가 아닐까 이제라도 전문가한테 맞기는 게 낫지 않을까 불안함이 몰려왔다.

불안함은 언제나 시작을 주저하게 만든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 중심 잡기란 나이를 먹어도 도통 쉽지 않구나.



책을 읽은 후 우리는 그냥 뭉뚱그려진 감정과 생각의 덩어리를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글이나 말의 형태로 옮기지  않는 한  생각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기억을 하기 위해서라도, 또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말하고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동진《독서법》


선생님이 미칠 때쯤 방학을 하고 엄마가 미칠 때쯤 개학을 한다는 말이 있다.

엄마 벌써 미칠 것 같은데 개학해주면 안 될까, 안 되겠지

그래, 안되면 즐기기라도 해야지


올 겨울, 읽고 쓰고 생각하라

따듯한 방바닥에 누워 귤 까먹으며 실컷 책을 읽기도 하고

그러다 쓰고 싶은 대로 써보기도 하면서


그것이 올 겨울 우리들의 방학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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