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20분
산소캡슐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조여 오는 심장통에 근육이 쪼그라들다 끊어질 지경이다. 억하고 멈춘 입이 닫히지 못하고 정지되어 버렸다. 부정맥도 공황의 일종일까? 후우.. 이어 숨이 차다. 낮 12~1시 발작 시간이었는데 시간이 아침으로 당겨졌다. 머리가 아프고 힘이 없어진다. 살짝 불안한 것이 예기 불안의 시작인 거 같다. 과호흡을 동반한 예기불안의 시작이다.
낮 1시 35분 점심약을 먹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턱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온다. 이건 공황 같다. 불안과 과호흡이 같이 시작됨을 알리고 목에서부터 산소의 부족함이 느껴지더니 살짝 예기불안도 느껴진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과호흡이 슬그머니 지나갔다.
다시 저녁 8시 30분 다시 과호흡이 시작됐다. 숨이 턱턱 막히고 명치가 짓눌리고 아팠다. 속이 울렁거리며 두통까지 시작됐다.
저번주 정신과를 가는 날이었다. 다른 환자분들도 많으니 상담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난 미리 할 말을 생각하고 간다. 새로운 증상을 얼른 말하고 대처약을 빨리 받아 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병원 가는 날은 마음이 급하다. 어떨 땐 내 폐 하나가 먼저 병원에 도착해서 기다릴 때도 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그동안 어떠셨을까요?"
"음, 많이 힘들었어요. 그전엔 부정맥인지 알았던 게 어쩌면 공황증상인지, 불안의 다른 양상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어지러워 쓰러진 적도 있고, 의식이 희미해진 적도 있고요"
"반복되는 시간차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 바쁘신 거 같아서 아침에 마음을 시로 써왔거든요 '우울의 끝 섬' 한 번만 읽어 주시겠어요."
"네에.. 음.. 이걸 본인이 쓰셨다고요?"
"네. 함축적이면 더 정확히 전달될 거 같아서요"
"운동도 멈췄습니다. 외부활동이 어려워서요. 길에서 공황으로 정신 잃으면 위험하니깐요"
"다음 주 수요일에 중요한 곳을 가야 하는데 벌써부터 못 갈 거 같습니다. 지금 병원도 심장을 부여잡고 왔거든요"
"다음 주 어디 가시는데요?"
"서울에 스승님 출간 북콘서트가 있는데요"
"스승님요?"
"네. 제가 글 배우고 싶어서 글을 배웠거든요. 그 스승님이 이번에 책을 출간하셔서 축하해 드리러 정말 가고 싶었는데 병원 오는 것도 힘드니 어떡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가보셔야죠. 제가 긴급약 그날 드실 거 하나 더 챙겨 드릴게요. 다녀오세요"
"그 약 먹으면 공황이 않오나요? 아님 금방 사라지나요?"
"그렇지는 않지만 증상이 덜 올라가고, 더 빨리 진정은 되죠"
"증상발현 후 먹는 거예요? 발현 전 예비약이에요?"
"발현후요"
"그럼 쓰러지거나 주저앉고 나서 먹을 수도 있는 거네요?"
"그렇죠"
"네.."
뭐지? 증상발현 후에 먹는 약이 무슨 긴급약이란 말인가. 괜히 가서 민폐 끼치고 분위기 흐리면 안 되지..
"아드님 학교 일 이후로 공황이 시작되신 거죠? 지금도 진행 중인가요?"
"아뇨 일시정지 상태입니다. 잘 됐네요"
"아직은 좀 지켜보면서 우리가 약을 하나만 바꿔서 써볼게요. 일주일 더 드셔보시고 또 뵐게요"
"네. 감사합니다"
증상이 매일 바뀌고 시간도 달라진다. 이런 짝사랑은 곤란한데 애들이 눈치가 없다. 매주 병원을 셋이서 다니는 게 쉽지가 않다. 감기라도 걸리면 한주에 병원을 몇 번을 다니는 건가?
나이 들수록 발길은 병원과 친구가 되고, 먼저 병원을 다니던 친구들은 또 다른 세상으로 이별을 고했다. 삶이 참 아플 때가 있다. 그게 나의 중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