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병실 창가에 앉아있는 너를 보러 가는 길, 오늘따라 단풍이 붉어 보이네. 마치 우리의 세포들이 마지막 불꽃놀이로 타오르는 거처럼.
너와의 시간이 벌써 삼십 년이 넘었지. 우리 집 앞 암센터로 네가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벌써 석 달째인데도 나는 익숙하지가 않다. 이 복도만 서면 난 숨이 턱 턱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한참을 서성이다 잡은 문고리. 내손이 살얼음처럼 떨리길래 애써 꼭 잡았어. 우리가 나누는 시간도 이렇게 조금씩 떨리고 흔들리고 있겠지!
이런 내 모습을 너에게 보여주기 싫은데, 내 눈이 벌써 울고 있네.
"바보야... 또 울었구나?"
네 말에 소리 못 냈던 눈물이 엉엉 소리를 내며 가슴을 때렸어. 미안해 친구야. 죽음을 앞둔 너보다 더 서럽게 우는 나를,
너는 여전히 따뜻한 손길로 나를 만져 주는데. 니 작은 온기마저 뺏어 올까, 나는 너무 두려웠어.
십 대에 처음 만나 마흔 넘어 이별을 준비하는 우리. 시간이란 참 이상해. 흐르는 듯 멈춰있고, 멈춘 듯 흘러가니까. 네 곁에 앉아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는 너의 투병생활. 내 가슴에 창칼처럼 또렷이 박혀 피가 나는 거 같아. 그런데도 넌 웃으며 "난 행복했어"라고 말하는 걸 보면...
난 무얼 했지. 난 왜 힘들다고, 죽고 싶다고 징징거렸을까! 나의 우울증과 통증이 한없이 가볍고 부끄러워졌어.
우리는 어쩌면 한 덩어리의 별빛이었을까? 지금은 각자의 궤도를 그리며 흩어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하나의 빛으로 만날지도 모르잖아. 창밖으로 떨어지는 단풍잎처럼, 우리에게 남은 시간도 하나둘 떨어지고 있겠지. 마지막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시리고 아픈 가을. 나는 조용히 널 품에 안기만 해.
이번 가을이 너의 마지막 가을이라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어 밀어내는 내 마음이, 저무는 햇살 아래 그림자처럼 길게만 늘어져.
나는 가을마다 너와 줍던 플라타너스 나뭇잎을 계속 주을 거야. 네 거와 내 거. 그러면 네가 먼저 골라. 누구 것이 더 큰지 내기하고 다시 달리자. 난 너와의 시간을 추억으로 만들지 않고, 늘 지금으로 살게. 너와 내가 같이 지구의 궤도에서 만나는 날까지.
사랑해, 나의 벗 수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