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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Mar 11. 2021

버드맨

'다시'가 아닌 '새로운'날갯짓을위한 응원가 / 말러 교향곡 9번

-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버드맨'의 포스터


한때 잘나가던 액션 히어로 배우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그는 영화 ‘버드맨’으로 할리우드를 지배하던 스타였다. 하지만 지금은 잊혀 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오직 ‘버드맨’으로 다시 돌아오느냐 마느냐 일뿐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상업 영화를 떠나 브로드웨이에 진출하여 예술가로서의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 원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호흡을 나누어야 할 상대 배우는 사고뭉치, 바람둥이이며 재활원에 다녀온 딸은 자신의 작품에 차디 찬 돌직구를 날리고 흥청망청 했던 결과로 재정적인 어려움까지.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점차 세상에서 잊혀가는 자신을 바라볼 자신이 없는 것이다. 잊히는 것은 곧 죽음이라 여기는 리건에게 자신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자아 ‘버드맨’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다시 찬란했던 우리들의 시대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 이미 육체적 매력을 잃었을 뿐 아니라 예술가로 기억되고픈 열망 때문이다. 그렇게 치러지는 세 번의 프리뷰 공연, 불안한 해프닝과 부끄러운 참극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가운데 더욱 비관적인 것은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평론가가 혹평을 예고한 것이다. 

절망스러운 그는 한 동안 끊었던 술을 마시고 취해 길거리에서 잠이 들고 아침이 되자 ‘버드맨’은 그를 깨운다. 그리고는 속삭이는 것이다. 모두가 환호하는 버드맨으로 돌아가자고. 이때 멋지게 날아오르는 리건, 하지만 이는 현실이 아니며 깨달은 듯 공연장으로 돌아와 그 첫 공식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지만 기어코 큰 사고를 치고야 만다. 마지막 장면, 자신을 향해 쏜 총이 가짜가 아닌 진짜였던 것이다. 얼굴을 붕대로 감은 리건, 그는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 예상했던 혹평은 호평으로 바뀌었고 세상은 새로운 예술가의 탄생에 호의적이다. 이제 그는 붕대를 풀고 ‘버드맨’에게 ‘꺼져’를 외치곤 창문가로 향한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딸 샘은 돌아와 병실 창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불안함을 느끼며 창 밖을 내려다 본다. 그렇게 아래를 살피던 그녀의 시선은 서서히 위로 향하고 얼굴에는 점차 웃음이 번진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 딸 '샘'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 프리뷰 공연, 리건의 독백을 배경으로 오스트리아 작곡가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9번>(Symphony No. 9 in D major) 1악장이 흐른다. ‘죽음의 교향곡’이라는 별명을 지닌 이 곡이 고결한 사랑에 관한 대사의 배경 음악이라니 어울리나 싶지만 권총 자살을 앞둔 연극 속 주인공이기에 맞는 선곡 같기도 하다. 자, 그렇다면 왜 죽음의 교향곡이라는 어두운 별명을 갖게 되었을까? 먼저 1악장의 악보에 적힌 “오, 젊음이여 사라졌구나, 사랑이여 가버렸구나”(O Jugendzeit! Entschwundene! O Liebe! Verwehte)와 ‘안녕’(Leb’wol! Leb’wol!)이라 되뇌는 수수께끼 같은 메모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글귀는 이후 많은 음악학자들과 지휘자들로 하여금 죽음과 연결지어 곡을 해석하도록 한 결과를 불러 왔으며, 작곡 당시 실제 작곡가는 심각한 심장병으로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이러한 해석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이렇듯 죽음은 그에게 있어 자신과 동떨어진 미지의 것이 아닌, 평생에 걸쳐 현실적이며 직접적인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 사랑을 찬미해 보지만 들리는 것은 죽음의 교향곡이다.


이는 그가 지내왔던 불행한 삶으로부터 온 것이다. 애초에 건강이 좋지 못했으며, ‘클림트’(Gustav Klimt),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더불어 빈이 낳은 20세기 초 3대 천재로 평가 받음에도 살아 있는 동안 그의 작품은 광기의 곡으로 폄하된다. 이에 더하여 유대인이기에 받아 온 차별, 부인의 외도, 완벽주의 성향으로 인한 세인들과의 불화, 그리고 결정적으로 첫 딸의 죽음이 그가 작곡했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 때문이라는 자책감이 더욱 그를 어둠 속으로 숨어들게 한다. 이러한 그의 내면적 불행은 비극, 방황, 죽음이라는 염세적인 모습을 띤 작품 세계로 표출되고 그 중심에 교향곡 9번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음울한 시기를 보내던 말러는 정신적인 불안이 극에 달해 결국 9라는 숫자에마저 심각한 의미를 부여, 자신의 9번째 교향곡에 번호를 붙이지 못해 ‘대지의 노래’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는 선배 작곡가들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드보르자크 등)의 마지막 교향곡이 9번이기 때문이었다 하니 그에게 있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컸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그래? 죽일 테면 한번 죽여봐”라듯 자신의 9번을 간결하면서도 발랄하게 해치워 버린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와는 심히 대조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러도 이 작품에서만큼은 9라는 숫자를 피하지 못하였으며 미완성의 10번을 제외하자면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 되었으니 여러 측면에서 죽음이란 주제와 연결된 음악임에는 분명한 것이다.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또 하나의 명곡이 절묘하게 사용된 또 다른 장면, 길거리에서 잠을 깬 리건의 귀에 ‘버드맨’이 속삭인다. 화려했던 과거로 돌아가자고. 이때 날아오르는 리건, 하지만 현실은 옥상 끝에 위태롭게 선 자신이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던 그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옥상에서 뛰어내려 빌딩 숲을 자유로이 날아 극장에 도착하는데, 이 은유로 가득한 장면에서 신비롭게 흐르던 음악이 있으니 바로 러시아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의 <교향곡 2번>(Symphony No.2, Op.27)의 2악장이다. 


- 힘겹게 날아오르지만 위태로운 옥상 끝, 그는 새로운 날갯짓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이 곡을 사용했을까?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의 참혹한 실패로 인한 깊은 트라우마에 작곡 불능 상태가 되어 오랜 시련의 시기를 보낸다. 그랬던 그는 정신과 치료를 통해 극복의 시간을 보내고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통해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 세계적인 작곡가로 인정받지만 아직도 교향곡은 자신에게 두려운 영역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10여 년 만의 재도전, 이는 다시 찾아온 자신의 불안한 처지를 예술로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또 한 번의 극복과 성공, 이후 작곡가는 차이코프스키의 후예라는 영예로운 칭호와 함께 명실상부 러시아를 대표하는 교향곡 작곡가로 입지를 굳히게 되니 과거의 허무한 명성을 뛰어넘어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날아오르는 세상 모든 주인공들에게 보내는 응원가인 것이다. 


- 라흐마니노프, 그는 음악가 중 가장 큰 손을 가진 이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이 외에도 영화 <버드맨>의 장면 곳곳엔 다양한 클래식이 사용되어 그 의미를 더한다. 러시아 작곡가인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 중 2악장,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도 영화의 장면을 통해 만나볼 수 있으니 눈과 귀를 동시에 열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들리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더불어 주목해야 할 뮤지션이 있다. 바로 영화의 OST를 담당한 멕시코 작곡가 ‘안토니오 산체스’(Antonio Sánchez)다. '팻 매스니'(Pat Metheny) 재즈그룹의 드러머였으며 ‘마이그레이션’(Migration)이라는 재즈그룹을 창단해 활동하는 실력파 재즈 드러머. 드럼 작곡가라는 말이 생소하지만 그가 창조해 낸 음악과 연주는 영화의 긴장감, 그리고 생동감을 전해주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며, 장면을 관통하여 흐르는 그의 드럼 소리는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하여 강력한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였지만 영화에 너무 많은 클래식이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했다니 참으로 융통성 없는 처사다.


- 영화의 OST를 담당한 '안토니오 산체스'



이 영화는 잊힘에 관한 이야기다. 화려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자아와 잊히지 않을 새로운 자아 만들기 사이에서의 갈등을 보여주며 과연 보여주기 위한 자아가 진정한 자아인지에 대한 문제제기 또한 잊지 않는다. 더불어 영화는 잊힘과 사랑받지 못함은 곧 죽음이라 계속해서 말하는 듯 하지만 사실을 그 허무함을 피력하며 타인의 관심과 사랑에 얽매이지 말라 충고한다. 

허무함의 끝에 위태로이 선 ‘리건’, 그런 그에게 꾸짖듯 들려오는 목소리, “도와줄까요? 어디로 갈지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때 ‘사랑받지 못하니 나는 존재하지 않아’라며 괴로워하던 그는 이젠 알겠다는 듯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오던 과거의 영광 <버드맨>을 향해 마침내 작별을 고한다. 새롭게 날아오를 준비가 된 것이다.



“예, 어디로 갈지 알고 있어요”


- 많은 사랑을 받는 다양한 나라를 배경으로 한 '버드맨' 포스터




추천음반 1

말러 해석에 있어 커다란 업적을 남긴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 말러의 인기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 놓은 일등공신이라 할 그가 베를린 필과 남긴 유일한 녹음이 바로 <교향곡 9번>이다. 그 역사적인 공연이 열린 1979년 국제 사면회를 위한 자선 콘서트에서 생애 처음으로 베를린 필과 만난 번스타인은 그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 간간이 들려오는 부자연스러운 앙상블과 관악주자들의 실수에도 불구 처절하고도 감동적인 연주를 선보인다. 특히 기괴함과 광란을 지나 만나는 4 악장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레니의 도약’마저 음악으로 만들며 순식간에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데 그 긴장감이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며 번스타인이기에 가능한 연주인 것이다. 

라이벌인 번스타인이 자신의 악기라 할 베를린 필과 함께 만들어 낸 감동에 위기감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곡이 지닌 아름다움에 고취된 것일까?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은 다시 한번 곡에 도전, 또 한 번의 놀라운 순간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스스로도 기적 같은 경험으로 다시 재현하기 어렵다고 하였으며 안티 카라얀들마저 인정하는 명연이 탄생한 것이다. 혼신을 다하는 악단과 그 극한을 이끌어내는 지휘자간의 팽팽한 긴장감과 혼연일체의 응집력이 놀라운 가운데 마침내 기적의 4악장, 들려오는 현의 절규와 절정의 아름다움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보여 주려는 듯 처절하면서도 초월적인 것이다.



추천음반 2

곡이 지닌 서정성과 아름다움을 특유의 ‘필라델피아 사운드’로 멋지게 표현한 ‘유진 올만디’(Eugene Ormandy)의 연주(SONY, 1959)와 특유의 러시아 사운드로 그 광활함을 내세운 ‘스베틀라노프’(Evgeny Svetlanov)의 녹음(MELODIYA, 1968), 그리고 이 곡이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데 일조한 ‘앙드레 프레빈(Andre Previn)의 연주(EMI, 1973)가 전통적인 강자로 자리 잡은 가운데, 놀라운 음질을 바탕으로 작품의 순 음악적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이반 피셔’(Ivan Fischer)의 2003년 녹음은 진솔한 감동을 선사하는 새로운 명연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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