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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여자들 Feb 11. 2021

나도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

집을 버리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이 집이 부담스럽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집안 곳곳의 넘쳐나는 물건들과 냉장고 안의 먹어야 할 식품들, 그리고 키운다며 읽겠다며 사들였던 식물들과 책들. 그중에서도 가장 버겁고 견디기 힘든 것은 오래된 무거운 가구들이다.


특히 안방에 있는 신혼 때 장만한 11자 옷장은 가장 큰 고민거리다. 당시 원목이라며 샀던 어둡고 무거운 옷장은 두꺼운 합판에 무늬목만 입혔을 뿐이라는 것을 목공을 하면서 알게 됐다. 또한 결혼 후부터 현재까지 한결같이 그 공간에 쌓여 있는 물건들(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한복과 가방들, 그리고 할인이라며 사댔지만 지금은 입지 않은 옷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버리기 아까워서, 쓸데가 있을 것 같아서, 때론 그런 물건이 있는 줄 몰라서.. 내 미련처럼 그 공간에서 차고 넘쳤다.

어쩌지? 어차피 옷장은 필요한데, 3개 중 1개는 버리고, 1개는 작은방에, 1개는 안방에 놓으면 나의 방이 조금은 넓고 여유 있을 텐데 라며 물건들을 정리해보려고 생각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아들과 내가 들기에 옷장이 너무 무겁다는 거였다. 생각만 하다 안 되겠다 싶어 이내 포기하지만 눈만 뜨면 보게 되는 옷장은 매일 아침마다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복잡하게 만들었다.


“버리자! 정리하자! 좀 해보자! 너도 가볍게 살고 싶잖아”
그것 아니어도 먹고 살 일로 복잡하고 생각이 많은데
왜 저 큰 물건조차 나를 가만두지 않을까?
매일같이 반복되는 고민에 짜증이 났다.  


아침을 거르고 바삐 나가기 위해 작은방으로 들어가다 색 바랜 주니어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어보니 여기도 옷들과 잡화들로 꽉 차있다. 아니 아들과 둘이 사는 공간에 옷들은 왜 이리 넘쳐나는 걸까? 입지 않은 옷들 때문에 입을 옷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아 더 화가 난다. 아무래도 나는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푸나보다. 못된 습관 같으니라고~

댄스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티셔츠 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두 번 입어봐서 어울리지 않거나 뚱뚱해 보이면 그다음부터는 언젠가는 입겠지~ 하며 1년, 2년, 3년을 옷장에 모셔뒀다. 그러다 또 줄줄이 걸려있는 그것들을 볼 때면 “또 언제 가는 입어야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의무감이 들었다.

보고 싶지 않아 곧바로 옷장 문을 닫는다. 옷장문을 닫고 보니 바로 옆 투명 미닫이문이 달린 작은방 창고가 보인다. 퇴근시간 지하철처럼 물건들이 투병 문에 딱 달라붙어 나를 보고 있다. 벗어나고 싶다며 상자들과 작은 가구들, 그리고 선풍기와 청소기가 뒤엉켜 서로 내리려 발버둥 치고 있다. 상자들에는 싸다는 이유로 한꺼번에 구입했던 물티슈, 화장지, 각종 문구류와 목공 소품들이 가득하다. 이젠 목재 기름칠에 쓴다며 버리지 못한 오래된 옷가지까지 장난 아니게 쌓여 어느 하나라도 잘못 건들면 다른 것까지 몽땅 쓰러질 것만 같다. 저렇게는 살 수 없다. 요즘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다. 뭐냐고~ 먹고살 일은 제쳐두고. 쯧쯧.  


우리 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24평치고 크게 빠진 거실이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거실에는 읽지도 않는 아이의 책들과 나의 책들이 책장을 가득 채웠고, 자잘 자잘한 소품들이 그 책장 위를 채웠다. 그것들이 꼭 필요할까? 싶다가도 얼마를 주고 샀는데 라며 버리는 것을 차마 하지 못하고, 결국 언젠가는 읽어야 한다며 또 하나 의무 거리를 만들고 말았다. 거기에 겨울이 되면서 얼어 죽을까 봐 거실 안으로 들여놓은 반려식물들이 책장 앞을 덮을 만큼 꽉 차있다. 이젠 그 식물들 덕에 빨래건조대 하나 겨우 놓을 수 있는 좁은 거실이 되었다. 물이 없어 말라죽으면 어쩌지?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아직 밖에 있는 저 식물들은 괜찮은 건지 계속되는 걱정에 해야 할 부담만 커져갔다. 쉴 공간이어야 할 집이 의무로 가득 차 쉴 수 없는 공간이 되어있었다.


복잡한 생각은 버리고 오늘 할 일에 집중하자며 신발을 신으려는 내 앞에 작년 말 아는 목수에게 받았던 목재들이 신발장을 막은 채 켜켜이 쌓여있었다. 썩는 것은 아니겠지? 저렇게 세워놓으면 나무가 휠 텐데... 빨리 사용해야 하는데 지금은 막상 만들만한 가구가 딱히 떠오르지 않으니 저렇게 놓을 수밖에.. 하고 싶은 목공이었는데 해야 하는 것이 되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졌다.   


그렇게 나는 물건을 책임과 의무와 함께 사들였다. 그러니 아침에 눈을 뜰 때면 그 공간의 물건들로부터 듣는 여러 소리들에 지쳐 집을 버리고 싶었는지도...

집 어느 공간에도 나에게 여유롭고 편안한 곳은 없었다. 지금 나에게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빈 공간이 절실했다. 예전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이런 집에 살 수 있어 참 좋고 감사하다 생각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집은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왜 이렇게 짐들은 늘어나는 걸까? 나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쌓아놓은 것이다. 그렇게 쌓아놓은 것들이 이렇게 못 견디게 싫은 이유는 아마도 한 달 전에 읽었던 책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 때문이다. 그 전에는 정리 좀 해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그 물건들이 스트레스가 되고 없애고 싶은 물건이 된 것은 그 책에 나오는 저자들처럼 나도 비움의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물건을 버리고 삶을 선택한 10인의 미니멀 라이프 도전기를 담은 이 책은 제목부터가 나를 붙잡았다. 버림을 시작하면서 엉망이었던 그들의 삶이 좀 더 여유로와지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과정을 보면서 나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저 옷장은 어떻게 옮기지?
저 책들은 어떻게 하지?
저 소가구들은 어떻게 정리하면 다 없앨 수 있을까?
옷들이 너무 많은데 옷장 2개에 다 정리가 될까?
목재는 옮겨야 하는데 아~ 무겁다. 
옷장 2개는 버려야 하는데 업체에 알아봐도 비싸서 안 되고 
결국 그냥 놓고 써야 하나? 도배도 이왕 하면 좋을 텐데...
아~ 빈 집에 살고 싶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 며칠 전 TV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 정우성편에서 이영자가 했던 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대로 사는 사람 정우성”

생각대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오늘따라 그 물음에 괜스레 우울해져 맘을 잡기 위해 영화나 볼까? 검색하다 그게 무슨 위로가 될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시간을 그렇게 보낼 거라면 생각대로 살아보자! 옷장이야 정리가 끝나면 어떻게 되겠지? 라며 옷장의 옷들을 몽땅 밖으로 꺼내 안방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거슬렸던 흠집 나 있는 옷장 한쪽 문을 버릴 옷장 문 한 짝과 바꿔 끼웠다. 처음에 시행착오가 있어 옷장 경첩이 망가져 식은땀을 좀 흘렸지만 그동안 배운 목공기술 덕에 다른 경첩을 이용해 깔끔히 바꿔 났다. 맘에 든다. 이상하게 힘이 난다. 2시간에 걸쳐 옷장 하나를 비우고 안 입는 옷을 2박스에 걸쳐 정리를 했다. 이렇게 쉽게 걱정 하나가 해결되었다.

진작 할걸~  내친김에 현관에 있는 목재를 상원이와 함께 목공소로 날랐다. 별거 없었다. 뭐가 그리 힘들다며 엄두도 내지 못했을까? “생각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는 말을 책에서 수도 없이 봤는데 결국 내가 이렇게 경험하는구나 싶었다.

이젠 작은방 창고에 있는 무더기들과 거실의 책들, 그리고 식물들이 남았다. 더 이상 걱정거리들이 아니었다. 어차피 읽지 않을 책들은 미련 없이 기증하고, 식물들은 내가 키울 양만 남겨두고 분양하는 것으로, 그리고 작은방 창고의 상자와 소가구들은 우선 밖으로 꺼내보기로 맘먹으니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비움의 과정은 나에게 생각보다 행동만이 답임을 알게 해 줬다. 근 한 달을 복잡한 생각과 고민으로 힘들었는데 왠지 3월부터는 머릿속 생각들을 행동으로 지워가며 생각대로 살 수 있을 거란 희망과 기대가 생긴다.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면 해야 할 것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뿌옇게 먼지 쌓인 채 뒷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는 생활용품들과 아직 정리하지 않은 작은방 창고의 물건들, 그리고 여전히 꽉 차있는 냉장고 속 인스턴스 식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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