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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여자들 Jun 02. 2021

장 꽃이 피었습니다

하얀 장 꽃이 뭉글뭉글 피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장 꽃이 만발합니다. 고운체를 가지고 가만가만 장 꽃을 떠냅니다. 장물을 가르고 체가 지나가는 길로 장 꽃이 따라옵니다. 말간 장물이 드러난 자리에 다시 하얀 장 꽃이 모입니다. 

하얀 장 꽃이 흩어지면 장물이 드러나고, 하얀 장 꽃이 모이면 장물이 꽃 아래로 잠깁니다. 체에 묻은 장 꽃을 맑은 물에 씻어내고 다시 장 꽃을 건져냅니다. 정성을 들려 건져보는데도 장물 위로 드문드문 장 꽃 찌꺼기가 남습니다.


잦은 봄비 탓일까?

아니면 메주 안에 피었던 곰팡이 때문일까? 

올해 장맛이 걱정이다. 햇살 좋은 날에 장독을 수시로 열어 마음을 다해 살피는 것 밖에 별도리가 없는지 마을 어르신에게 여쭤보아야겠다. 


비 쏟아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몇 시쯤인지 알 수는 없다. 아직 방안은 캄캄하다. 언제부터 저렇게 비가 많이 쏟아졌을까? 어제저녁 잠이 들기 전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다. 빗소리를 가르며 어디선가 천둥과 번개 치는 소리가 들린다. 방의 창문에 번쩍하고 빛이 순식간에 비추었다 사라진다. 다시 지붕을 두드리며 세차게 비 내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봄비가 여름 소나기 같다. 문뜩 올해는 장마가 일찍 시작한 건가 싶다. 


우르릉 우르릉 하늘이 운다. 저 멀리서 번개가 번뜩이는 섬광이 다시 유리창에 와닿는다. 빗소리가 여전하다. 너무 많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최근의 이런저런 걱정들이 따라붙는다. 오빠는 괜찮은지? 공무원 시험에 떨어졌다는 조카도 걱정이고, 아들이 시험에 떨어져 상심하고 있을 언니도 걱정이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잠자리가 괜히 뒤숭숭해지는 것만 같다. 

몸을 돌려 다시 누워본다. 쉽게 잠이 들 것 같지 않다. 다시 몸을 돌려, 바로 누워본다. 한참을 뒤척이다 별별 생각만 태산같이 커가고 이대로는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흔들어 다닥다닥 붙어있던 생각들을 털어낸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며 숨소리와 아랫배에 집중해본다. 이대로 천천히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귀가에 간간이 빗소리와 숨소리가 교차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엄마의 기침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꿈결인 것 같은데 몸이 먼저 일어나 기침을 하는 엄마의 등을 두드린다. 그리고 문 쪽으로 향해 걷다 벽면을 더듬거려 스위치를 찾고 방안에 불을 켠다. 미처 달아나지 못한 잠을 눈을 질끈 감았다 떠서 쫓아본다. 

생리식염수를 그릇에 따르고 오른손에 일회용 위생장갑을 낀다. 석션 튜브의 끝은 오른손으로 잡고 중간의 압력을 조절하는 부분은 왼손으로 잡는다. 침대 아래 기계의 스위치를 ‘딸각’ 발로 눌러 켜고 엄마에게 향한다. 


‘직-지직 지지-직’ 


가래가 튜브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가 힘이 드는지 헛구역질하며 들릴 듯 말 듯 한 신음을 간간히 토해 낸다. 석션을 마치고 나는 엄마의 체위를 변경하고 틀어진 이불을 다시 바로 잡아 덮어준다. 

새벽이면 엄마는 기침과 가래가 유난히 많아진다. 석션을 해주지 않으면 기도가 막힐 위험이 있어 꼭 해주어야 하는 일이다. 잠이 들면 조금 덜 하지만, 엄마의 수면 패턴은 낮과 밤이 바뀐 지 오래다. 


나는 불을 끄고 다시 침대 아래 요 위에 나의 몸을 눕힌다. 잠깐이라도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30분이 될지 1시간이 될지 다시 일어나게 될 거라는 걸 알기에 더더욱 나의 몸은 깊은 잠을 간절하게 원했다. 

최대한 빠르게 잠들고, 깊이 잠들었다 다시 일어나고 싶다. 

가끔 나 자신이 몽유병에 걸린 사람 같을 때가 있다. 잠이 깬 것도 잠든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에서 석션하고 다시 눕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일어나고를 반복한다. 밤새 세네 번을 반복하다 보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게 잠을 설치고 나면 나는 온종일 정신이 몽롱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세상이 멀쩡하다. 저수지 넘어 앞산의 나무는 물기를 머금어 더 푸르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손으로 빗어 넘기고 마당으로 나섰다. 발아래 잔디도 싱그럽다. 텃밭의 앵두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어제 다 따지 못한 앵두가 더 빨갛게 익었다. 밤새 그 비를 다 맞았을 텐데 어제보다 앵두가 더 붉다. 오늘은 앵두를 마저 따야겠다. 

그리고 햇볕이 좋으니 장독의 뚜껑도 열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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