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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여자들 Apr 26. 2021

감자 한 박스를 샀다

엄마는 감자를 참! 좋아한다.

여름이면 한 솥 가득 쪄서, 밥 대신 실컷 감자를 먹는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비위가 상해 고기를 먹지 못했다고 했다. 선택적 채식주의자이기보다는 타고난 채식주의자이다. 하지만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육식을 즐겨한다. 할머니는 보름이 넘게 고기를 상에 올리지 않으면 빈혈이 왔고, 아빠와 오빠들은 고기를 먹지 못해서 기운이 나지 않는다며 투덜댔다. 그런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엄마는 고기 요리를 참 잘했지만, 정작 본인은 입도 대지 못했다. 아버지는 늘 그런 엄마를 산골에서 시집와서 그렇다며 타박을 했고, 자식들은 엄마의 건강을 염려하며 조금씩 먹어볼 것을 권했다. 하지만 가족의 염려와 걱정에도 엄마는 고기를 먹지 못했고, 평생을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초여름, 학교에 다니기 전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지게를 타고 서당골 감자밭으로 갔다. 산골짜기를 들어서는 첫머리에 있는 밭이었는데, 주로 감자와 고구마, 콩 같은 것들을 심어 가꾸는 밭이었다. 

아버지가 고랑을 따라 감자 줄기를 먼저 뽑아 놓으면, 엄마는 호미로 흙을 이리저리 제치고 둥글둥글한 감자를 밭고랑에 꺼내 놓았다. 나도 엄마를 따라 호미를 들고 감자를 캐겠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내가 캐는 감자는 생채기가 나기 일쑤였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며 옷 버린다고 감자는 놔두고 약에 쓴다며 굼벵이를 주워 담으라고 하셨다. 감자는 상처가 나면 금방 썩어 보관이 어려운데, 자꾸 내가 생채기를 내니 엄마가 다른 놀이 감을 어린 딸에게 찾아준 것이다. 

그렇게 감자밭에서 엄마는 호미로 하얀 감자를 캐고, 나는 호미 끝으로 하얀 굼벵이를 주웠다.


부엌 안쪽의 광 바닥, 볕이 들지 않는 곳에 감자가 있었다. 엄마는 여름내 감자를 찌고, 볶고, 부치고, 밥에 넣고, 국을 끓여 밥상에 올렸다. 놉을 얻어 생강 밭에 풀을 메면 새참으로 쪄서 나갔고, 생채기가 난 감자는 물에 담가 녹말을 가라앉혀 까만 줄 돔보 콩을 넣고 개떡을 쪄 간식을 만들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밀가루 반죽을 밀어 감자를 숭숭 썰어 넣고, 수제비나 칼국수를 끓여 온 식구가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고기를 먹지 않는 엄마에게 감자는 특별하면서도 맛있고 소중한 음식 재료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엄마와 둘이 살았다.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나의 늦은 귀가로 엄마는 늘 혼자서 저녁을 먹는 일이 많았다. 밤늦게 퇴근을 해서 집에 오면 방문 앞에는 삶은 감자가 냄비 채 있는 날이 많았다. 인기척에 엄마는 잠에서 깨어 저녁을 먹었는지 물었고, 나의 대답과 상관없이 저녁에 찐 감자라며 먹으라고 말했다. ‘아마 혼자 먹어야 하는 밥이 입맛도 없고 귀찮아서 또 감자를 삶아 먹었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렇게 자주 먹는데도 엄마는 감자를 물리지 않아 했다. 입맛이 없거나 찬이 마땅치 않아도 그리고 궁금하면 감자나 삶아서 먹자는 말을 자주 했다. 


지난봄, 나는 감자를 한 박스 샀다. 

겨우내 엄마의 간식이었던 고구마가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봄이 오고, 너무 비싸서 조금씩 사서 먹던 감자를 이른 장마가 시작하기 전에 한 박스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침을 먹고 시장에 가기 전 식당을 하는 동네 언니에게 가격을 묻고, 시세를 알아보았다. 역시 감자 가격이 많이 내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장에 들러 20kg 큰 박스 하나를 떡하니 사 왔다. 감자 한 박스에 이렇게도 내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다니, 어서 빨리 엄마가 좋아하는 감자를 맛있게 쪄서 주어야겠다.


막 쪄낸 감자는 포실포실 한 하얀 속살이 툭! 툭! 터져 분가루를 바른 듯하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뽀얀 감자를 접시에 담아 엄마에게 간다.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일으켜 앉히고, 간이 식탁을 펴 그 위에 감자를 놓는다. 

‘엄마!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나는 감자와 물 컵을 엄마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리고 마주 앉아 엄마가 감자 먹는 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맛있게 먹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뒷설거지를 하러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설거지를 마치고 내가 다시 엄마에게 갔을 때, 엄마는 감자를 먹지 않고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감자를 먹을 만큼 먹어 인제 그만 먹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뭐해? 

왜! 감자를 안 먹고 만지고만 있어? 

‘사자들 먹으라고’


나는 순간 내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잘 몰랐다. 


‘뭐라고?’

‘저그! 저그 마당에 사자들 먹고 가라고~’


아! 나는 그제야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침대의 식탁 위에 엄지손톱보다 조금 크게, 감자를 뭉쳐 세 덩어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접시에 남은 감자를 다시 손으로 집어서 세 덩어리 위에 나누어 보태고 있었다. 엄마는 손가락으로 감자를 꼭꼭 쥐면서 너무나 태연하게 나를 쳐다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랐고,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엄마가 말하는 사자는 저승사자를 말하는 것이었고, 지금 우리 집 마당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머릿속에서는 ‘왜? 하필 엄마가 보는 망상이 저승사자일까?’라고 당황스러웠지만, 놀라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엄마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식탁 위에 엄마가 만들어 놓은 감자 덩어리를 다시 접시에 담으며 말했다. 


‘엄마! 사자들이 바쁘데, 다른 곳도 가야 된데, 그래서 오늘은 이것 못 먹고 간 데’

‘아니어, 왜 그려 이거 사자들 먹는 것이여~’

‘.....’

‘아이고! 갔네. 벌써 갔어. 엄마! 다음에 와서 먹는데~’


손사래를 치는 엄마를 겨우 진정시키고, 감자를 담은 접시를 치우고, 엄마를 침대에 다시 눕혔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주방으로 나와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조금 있으면 햇감자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포실 포실하게 쪄진 감자를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먹던 엄마의 모습을 이제는 마주할 수 없다. 지난여름 엄마는 내가 샀던 감자 한 박스를 다 먹지 못하고, 뇌출혈이 와서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치료를 받고 집으로 퇴원했지만, 지금은 입으로는 물 한 모금도 넘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감자를 먹으며 맛있냐고 묻는 내게 고개를 끄덕여 온몸으로 맛있다고 말해주던 엄마의 모습이 그립다. 그리고 하얀 감자 꽃처럼 해맑게 웃던 엄마를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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