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산희당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여자들 Mar 27. 2021

전원생활

‘슥싹 슥싹 슥싹 슥싹'


톱날이 죽은 나뭇가지의 살을 헤집고 들어간다.  

3월이 오고,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어느새 나뭇가지에 작은 눈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새순이 돋기 전에 어서 전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톱질하는 손이 자꾸 주춤거린다. ‘힘을 더 주어야 하나?’ 생각하고 나뭇가지에 박혀있던 톱을 힘껏 아래로 당겨본다. 아! 하는 사이, 톱날이 나의 왼쪽 가운데 손가락 마디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의 오른손에는 작은 쇠톱 하나가, 왼손에는 잘린 나뭇가지가 들려있다.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분재 느티나무의 전지를 하려다 그만 나의 손가락이 잘릴 뻔했다. 

피가 난다. 붉디붉은 피가 땅바닥으로 뚝! 뚝! 떨어진다. 

‘으- 다쳐버렸어~’

통증보다 나의 서투른 톱질을, 장갑을 끼고 해야 했던 후회를, 그리고 조심하지 않은 나의 실수를 먼저 탓해 본다. 

손가락 끝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그제야 통증을 실감한다. 나는 들고 있던 톱을 바닥에 던져놓았다. 그리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상처 부위를 꾹 눌러 지열을 해본다. 

손가락이 점점 더 아리고 욱신거린다. 

‘아~악’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신음이 새어 나온다.

다친 곳을 누르고 있던 오른 손을 살짝 떼니 다시 피가 뚝뚝 떨어진다. 봄날의 동백꽃처럼.

아직 지혈되지 않았나 보다. 다시 누르고 떼고, 누르고 떼고,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소독도 하고, 약도 발라야 하는데 피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다.


나는 많은 사람이 꿈꾸는 전원생활을 한다.

나이 마흔다섯에 작은 집을 지었고,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산다. 

집의 뒤쪽으로는 나지막한 산이 있고, 집 앞에는 논과 저수지가 있다. 어릴 때부터 살았던 곳이라, 봄이면 들에 나가 나물을 뜯고, 가을이면 알밤을 주우러 뒷산으로 간다. 정월이면 장을 담그고, 겨울이 다가오면 텃밭에서 키운 야채로 김장을 한다. 이런 나의 삶을 사람들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이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원생활은 말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잔디를 심어 놓은 마당은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그 빼곡한 뿌리 사이사이에도 풀이 자라난다. 봄에 자라는 풀이 다르고, 여름에 자라는 풀이 다르다. 또 장마가 시작되면 잔디는 마치 숲 풀처럼 자란다. 2주가 멀다고 잘라주지 않으면 그대로 정글이 될 판이다. 

마당 잔디밭을 가꾸는 일 못지않게 살뜰히 보살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화단이다.

봄, 여름, 가을 눈의 호강과 보고, 즐기는 작은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꽃을 심고 가꾸어야 한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나는 정원의 꽃과 나무는 가꾸어야 하고, 손이 가는 만큼 예쁘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또한 텃밭을 가꾸는 일은 더 만만치 않다. 기계를 부르자니 너무 작고, 손으로 하자니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하루는 괭이로 땅을 파고, 하루는 거름을 뿌리고 쇠스랑으로 고랑을 만든다. 그리고 하루는 씨앗을 뿌리거나, 비닐을 치고 모종을 심는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자라는 동안 내내 두 번, 세 번은 풀을 메야하고, 가물면 물도 한 번쯤 주어야 한다. 어느 것은 순도 집어 주어야 하고, 열매가 맺고 익으면 수확도 해야 한다. 한 번에 수확이 끝나는 작물도 있지만 두 번, 세 번, 네 번에 걸쳐 익는 순서대로 계속 따주어야 하는 것도 있다. 

들깨나 콩 같은 곡식들은 베고, 말리고, 두드려서 알곡을 추리고 다시 쭉정이와 검 부적을 골라내어야 겨우 일이 끝난다. 이렇게 해도 나의 텃밭 농사는 매년 들쑥날쑥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시기를 놓쳐서 농사가 형편없기도 하고, 작물이 병에 걸리거나, 벌레들을 잡아주지 못해서 먹을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수고를 다 하면서 텃밭 농사를 짓다 보면 새삼 농부가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럽다. 


시골에 살겠다고 마음먹고, 굳이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아빠는 우리 집을 직접 지었다. 본채와 건너 채, 그리고 외양간과 헛간 아빠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하나씩 짓고 넓혀갔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아빠는 손이 야물고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집을 짓는 것뿐만 아니라 담을 쌓고, 구들을 놓고, 아궁이를 만들고, 볏짚과 대나무를 이용해 일상에 필요한 살림살이도 직접 만들어 썼다. 그런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엄마와 나 둘이서 살 게 되면서 아빠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집은 여기저기 티가 나기 시작했다. 


시골집은 겨울이면 너무 추웠고, 여름이면 파리와 모기 때문에 너무 힘이 들었다. 

또한, 오르고 내리는 단과 문턱도 너무 많아 불편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여기저기 불편함을 줄여보려고 고치고, 수리하고, 무엇인가를 덧대었지만,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겨났다.  

천장에서는 쥐들이 저녁마다 마라톤을 했고, 문은 뒤틀리고 삐걱거렸다. 수도며 전기, 보일러가 이런저런 이유로 고장이 잦았고, 지붕의 기와는 깨지고 흘러내려 비가 들어갔다. 대책 없이 낡고 늙어가는 집을 아빠가 돌아가시고는 한 번도 제대로 수리하지 못했다.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망가진다고 한다. 나는 주택에 살면서 이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실감하며 살고 있다.

큰비가 오거나 태풍 같은 거센 바람이 불면 집을 한 바퀴씩 돌아보는 것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물은 잘 배수가 되고 있는지, 배수구는 막히지 않았는지, 앞뒤 경계의 석축과 옹벽은 이상은 없는지, 처마의 물받이는 괜찮은지? 괜한 걱정을 하는 듯 보이지만, 나는 집을 짓고 이 모든 것을 살피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쓰라리게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이제 이 모든 것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별로 표가 나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고된 이 일들은 끝이 없다. 가끔은 이 일들의 일부는 잡념을 없애기 위한 요긴한 활동이 되기도 한다. 풀 뽑기가 그렇다. 특히, 잡초를 제거하는 그 일에 나는 나름의 이름을 붙였다. 일명 풀 멍. 요즘은 ‘멍 때리기 대회’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머리속이 복잡하거나 이런저런 망상이 끝도 없이 일어날 때 기꺼이 마당으로 나간다. 그리고 풀을 뽑기 시작한다. 풀을 뽑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저절로 망상은 사라진다.  

우리 집 마당과 텃밭에서도 가능한 것임을 나는 자연스럽게 그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따뜻한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봄비가 왔다. 올 한 해도 나의 ‘풀 멍’은 계속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김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