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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여자들 Nov 15. 2020

국수

글쓰는여자_푸른산

내가 병실에 들어섰을 때 엄마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헐렁한 환자복, 작고 외소 한 어깨, 두 손으로 꼭 잡은 그릇, 고개를 숙여 식사를 하는 것도 같고, 멍하니 그릇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 같은 엄마의 모습!

엄마는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대로 먹은 것을 멈추었다.  신음처럼 엄마의 입 밖으로 무슨 소리인가가 흘러나왔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없이 서글퍼 보이는 엄마에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2018년 1월 엄마는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엄마는 병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불안해했고, 잘 먹지 못해 많이 수척해진 상태였다. 

일주일에 두세 번 나는 엄마에게 갔다. 

나는 운전을 하고 가는 내내 ‘무엇을 사가지고 갈까?’

‘입맛이 당기는 게 뭘까?’ 고민했지만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빈손으로 병실에 들어섰다.  

흔들리는 엄마의 눈빛 때문 이었을까? 신음소리 같아 알아들을 수 없었던 엄마의 말 때문 이었을까? 나는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엄마의 손에 들려있던 대접을 서둘러 받아 들었다.

국수였다!    


나는 침대 위 간이식탁에 그릇을 내려놓고서야, 겨우 등에 메었던 가방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는 외투도 벗지 못한 채 조금 남아있는 국수를 마저 엄마에게 먹였다. 국수 면은 이미 퉁퉁 불어 있었고 국물은 차가웠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얼마 되지 않은 국수를 먹는 내내 엄마의 눈빛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울음 반, 국수 반 서글프고 가슴 아픈 엄마의 점심이었다.     


평상시 워낙 국수를 좋아하는 엄마였기에 나는 좀 더 국수를 드리고 싶었다. 병원 측에 부탁을 해 보았지만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탓에 남은 국수는 없다고 했다. 

엄마에 허기가 내게로 전해지는 듯 나는 배속에 허기를 느꼈다. 

나는 엄마에게 밥이라도 조금 더 드리고 싶었지만, 엄마는 더 이상 먹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다른 무엇이라도 엄마에게 조금 더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지난번에 사다 놓은 간식이 생각났고 나는 서둘러 빵과 두유를 챙겨 엄마에게 주었다.      


점심식사 뒷정리를 하고 엄마의 틀니를 빼서 닦고 나니 그제야 나의 코끝으로 쿵쿵한 무슨 냄새가 느껴졌다. 엄마의 눈가에 잔뜩 붙어 있는 눈곱도 보였다.

나는 침대 밑에 놓아 둔 대야를 꺼내들고 병실 안 화장실로 향했다. 대아에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물을 담아 엄마의 얼굴과 손을 씻겨 주었다. 그래도 냄새는 여전했다.  

엄마의 기저귀를 살짝 들춰 보았다. 아무 흔적이 없었다. 

다른 어르신한테서 나는 냄새인가? 나는 애써 흔적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누워있는 엄마의 곁에 앉았다. 엄마는 그제야 내게 밥을 먹었냐고 물었고, 흔들리는 엄마의 눈빛도 잔잔해졌다.     


그녀가 국수를 삶는다. 

오늘 그녀가 만드는 국수는 물 국수다. 그녀는 항상 국수를 삶기 전에 먼저 육수를 만든다.  그녀는 마른 다시마 3~4조각과 표고버섯을 넣고 반나절 정도 우려낸 육수를 냉장고에서 꺼내 싱크대 위에 놓는다. 그리고 냄비에 육수용 멸치 한주먹을 넣고 불을 켜서 비린내를 날려 버린다. 그런 다음 육수용 멸치에 우려낸 다시마 육수를 부어 20분정도 팔팔 끊인다. 마지막으로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마늘, 후추 약간, 채 썬 애호박과 송송 썬 파를 넣으면 끝이다.  


국물이 만들어지는 동안 그녀는 냄비 하나를 더 준비한다. 이제 국수를 삶아야 한다. 

그녀는 손잡이가 있는 냄비에 물을 부어 가스 불에 얹고, 물이 끊어 오르자 먼저 소금을 한 스픈 넣는다. 그녀가 엄지와 검지를 이용 오백원짜리 동전보다 약간 크게 마른국수를 쥐어서 냄비에 넣는다. 그녀는 국수를 넣고 재빠르게 길 다란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휙! 휙! 저어준다.  바글바글 하얀 거품과 함께 국수가 끊어 오른다.    

 

그녀는 끊고 있는 냄비에 차가운 물 반 컵 정도를 붓는다. 다시 국수가 끊어 오르고 다시 찬물을 붓는다. 국수가 불지 않고 잘 삶아지도록 끊고 있는 물에 온도를 떨어뜨리는 충격요법이다. 그녀는 두 번 정도 충격수를 더 준 후에야 재빠르게 국수를 건져낸다. 그리고 건져낸 국수를 찬물에 넣고 손으로 박박 비벼 씻는다. 삶아낸 국수 면에 엉켜있던 미끈미끈한 가루들이 씻겨나가 맑았던 물이 뿌옇다.      


그녀는 씻은 국수를 건져 바구니에 담아 물기를 뺀다. 오목한 그릇에 삶은 국수를 담고, 팔팔 끊인 멸치국물을 부어 쟁반에 바쳐 들고 그녀가 방으로 향한다.    


그녀가 국수를 먹는다.  

국물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그녀의 오른손은 포크로 국수를 건지고, 왼손은 포크에 걸쳐진 국수를 돌돌 말아 천천히 입에 넣는다. 언제부터인지 젓가락질이 서툴러진 그녀는 포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불편하면 그녀는 이제는 두 손으로 국수를 먹는다.    

그녀의 주름투성이 얼굴이 그리고 입술이 오물오물 국수를 먹는다.  


숯같이 검던 머리카락이 하얀 국수 가락처럼 백발이 되고, 헐렁해서 자꾸만 빠져나오려는 반쪽짜리 틀니만 남았어도 그녀에게 국수는 여전히 별미이다. 

가끔은 사례가 들리기도 하고 기침이 나기도 하지만 그녀는 국수를 남기는 법이 없다.  

기다랗고 가는 국수 가락이 주르륵~ 미끄러져 다시 사발에 주저앉아도, 그녀는 괘념치 않고 다시 국수를 먹는다. 

그녀가 뽀얗고, 가늘고, 보드라운 국수를 맛있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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