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강의 준비를 합니다. 오늘은 또 무슨 말로 학생들에게 동기를 주고 자극을 줄지 오프닝 멘트를 준비합니다. 가끔은 오프닝이 길어져서 정신 차리고 강의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강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 중간중간 모리(고양이)가 와서 가만히 쳐다봅니다. "그만하라는 뜻인가?" 강의 준비가 길어지면 모리가 정신 차리라고 신호를 줍니다.
그러던 중 오후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살짝 어지럽고 기운이 없다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어제 아내가 "매가리 없어 보인다"고 말하며 걱정했는데,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몸은 있는데 영혼이 없습니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은 움직이는데 머리는 느릿느릿해서 손가락이 다음에 무엇을 눌러야 하는지 기다리다 허공을 두드립니다.
아내는 저의 기분을 잘 알아챕니다. 제가 모르는 저도 알아채고, 제가 숨기고 싶은 저도 알아챕니다. 그런데 신기합니다. 가끔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알아채지 못합니다. 마치 "알아주기를 바라면 말로해야지 뭐하는 짓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그 의도마저 알아채는 능력이 있나 봅니다. 어쨌든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빨리 저를 알아채는 사람입니다.
이번에도 아내는 저를 하루 앞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닭백숙 먹으러 가자~"
기운이 없어서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남은 미역국을 데우고 있었던 찰나, 아내가 말했습니다.
프리랜서는 먹는 것에도, 입는 것에도 신경을 씁니다. 수입이 투명하여 지출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저는 제주에 와서 강의하고, 연구하며, 여러 활동을 통해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호박이 3,000원에 가까워지고, 기름(휘발유)이 2,000원대를 넘으려는 물가는 저축하고 대출금을 갚아가며 차근차근 목돈을 마련하고 싶어하는 신혼부부에게 얄미울 정도로 인정없는녀석입니다.
아내는 닭백숙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 생일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든다고 했습니다. 결혼 전이었으면 마음 편히 했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의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 마음에 걸리면 해도 괜찮아."
제가 결혼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은 상대방(아내)의 생각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도록 이야기하는 것은 딱히 도움을 주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을 말하기 전에 상대방의 생각을 헤아려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을 똑같이 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아내)도 상황이 있고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부부는 예정대로라면 2022년 겨울에 적을 수 있지만 나름의 목돈이 생깁니다. 목돈만큼 마음의 여유도 생길 것 같습니다. 그 돈으로 분수에 맞게 작은 책방을 하려고 합니다. 워낙 적은 목돈이라 걱정은 되지만, 희망은 크고 마음은 넉넉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제주에서 또 다른 보금자리를 마련할 생각에 강의도 더하고, 연구도 더 하면서 열심히 노동을 합니다. 그리고 저축합니다.
저는 지나치게 아끼는 습관과 생각이 몸에 배서 괜찮지만, 아내가 저 때문에 고생입니다. 그런 아내가 고맙습니다. (아내의 속마음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