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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직구작가 Jun 10. 2023

당신은 스마트한가요?

-세상의 모든 엄마, 아버지 그리고 우리에게

아이를 학원에 바래다주고 오는 길 유난히 심한 갈증에 근처 카페에 들렀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매장 앞에는 먼저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 있었다. 나보다 한 발 먼저 매장으로 다가간 중년의 여인이 카드를 내밀며 직원에게 주문을 했다. 나는 키오스크로 다가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키오스크 화면을 누르는 내 뒤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다음 주문을 하기 위한 사람인 줄 알았다. 결제가 끝나고 대기번호가 적힌 영수증이 나오자 나는 꽂았던 카드를 뽑았다.

-저기... 이거 어떻게 하는 건지...

나보다 먼저 매장에 도착해 직원에게 카드를 주고 주문했던 여인이었다. 예순 살 전후로 보이는 얼굴에는 수줍음과 망설임이 함께 묻어났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이거요? 이거 몇 번 해 보시면 금방 하실 수 있어요. 여기서 시키는 대로 천천히 누르면 돼요.

다행히 우리 다음으로 주문을 기다리는 손님이 없어 나는 차근차근 그녀에게 키오스크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줄 수 있었다.

-우리 딸이 몇 번을 가르쳐 주는데 맨날 잊어서 그냥 카드 주고 주문을 해버린다니까...

-처음에 젊은 사람들도 익숙해지려면 자주 사용해 봐야 해요. 저도 기계가 달라지면 당황한 적 많아요.

-아 그래요? 애기 엄마는 금방 척척 주문하던데 나는 이 기계 앞에만 서면 손가락이고 머리고 멈춰버린 거 같아서 정말 식은땀이 난다니까. 딸이랑 오면 매번 가르쳐 주는데도 혼자 오면 왜 이렇게 까막눈이 되는지 몰라. 서른 넘은 우리 딸이 이제 화를 내더라니까. 하하하


그녀의 멋쩍은 웃음을 보며 나는 나의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부모님이 내게 전화를 거는 용건의 절반 이상은 심부름과 물건의 사용법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 홈쇼핑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니 주문을 대신해 달라, 새로 산 청소기의 필터를 끼워야 하는데 방향을 모르겠다, 공인인증서를 발급하라고 하는데 이건 무엇이더냐 등의 질문과 주문은 이제 일상에 가깝다. 내게 심적 물리적 여유가 있는 날은 친절하게 대답하고 주문하지만 아이 둘을 키우는 상황에서 그런 날은 많지 않아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더랬다.

그러다 다시 생각이 나면 엄마의 홈쇼핑 물건을 검색해 보고 주문하는데 어떤 날은 매진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매진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며칠이 지나면 엄마는 왜 주문한 물건이 도착하지 않느냐 다시 전화를 한다. 그제야 그때 매진되어 못 샀다고 말하면 아쉬워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다시 마음 한 켠에 나도 모르게 짠한 감정이 올라오곤 한다. 

-엄마, 전화로 주문하면 되는 걸 굳이 나한테 전화해서 해달라고 그래?

-니가 핸드폰으로 사면 쿠폰도 쓰고 적립금도 쓰고 나보다 싸게 사주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핸드폰 결제 하는 것 좀 배우라고. 지난번에도 가르쳐 줬잖아. 그거 금방 한다니까 진짜 

-너도 나이 들어봐라.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게 우리 나이야. 익숙하지 않은데 복잡하기까지 하고 이거저거 하라는 건 왜 그리 많다니? 그냥 니가 해줘라


처음 보는 여인에게 키오스크 사용하는 방법을 지나치도록 친절히 설명했던 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세상이 변했고 코로나 19로 대면으로 주문하는 방식보다 비대면이 익숙해진 요즘이다. 스마트한 기기에 익숙한 우리를 키워낸 부모 세대는 그 스마트함에 불편을 경험하고 어려움을 느낀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더 편해진 세상에서 더 불편해진 세대라니. 물론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배운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난이도의 일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ATM에서 손주들 용돈으로 줄 현금을 인출하고 마트 계산대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고 자식 핸드폰 번호로 현금영수증 처리를 하는 것 까지가 익숙한 그들에게 키오스크와 인터넷 쇼핑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인터넷 쇼핑을 배워 제법 해 낸다는 엄마 친구는 쇼핑몰에서 제공하는 쿠폰을 잘 쓰지 못하고 제휴 카드 할인을 놓치는 바람에 딸에게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엄마 지인들이 그 이야기를 하며 '그러니까 배워봤자 소용없다'는 의견과 '그래도 배워서 해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나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한참을 생각했더랬다. 


열한 살 딸과 여덟 살 아들을 키우는 나는 고백하건대 기계치다. 건전지 플러스 마이너스를 구분하는 정도일 뿐 아들의 전자시계 시간을 맞추는 것을 힘들어하고 노트북에 뜨는 각종 업데이트 팝업에 식은땀이 난다. 그래도 찬찬히 읽어가며 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길게 가지 못하고 남편을 호출하곤 한다. 인터넷 쇼핑이나 키오스크 주문은 아이들을 키우며 단련된 내공일 것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이가 원하는 음료를 주문해 주는데 어려움이 생기고 쇼핑앱을 통해 주문하는 상품이 오프라인에 비해 훨씬 저렴하기에 생존 본능에 의해 학습된 결과물인 것이다. 코딩을 배운다는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서 코딩이 무엇인가 스쳐 생각은 해 보았지만 막상 내가 코딩을 배울 엄두는 나지 않는다는 것도 부끄러운 고백이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내가 키오스크 앞에서 만났던 여인의 모습을 하고 내가 어딘가에 서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보다 세상이 더 스마트 해지면 나 역시 따라갈 수 없는 속도가 될 것이고 기계와 친하지 않은 내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키오스크 앞 여인의 모습이겠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운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배움의 난이도가 살아온 연륜이나 경험에 비례해 쉬워져야 하는데 반비례로 가고 있어 문제가 된다. 지금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공지능이 익숙한 세대인 반면, 우리 부모 세대에게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인공지능이고 스마트 기기이다. 출시되는 가전제품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기능들을 새로이 탑재하여 소비자에게 제공하지만 나는 기본적인 기능을 익히고 사용하는데도 한참이 걸리는 사람인지라 사용 설명서마저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간다. 젊은 내가 이런데 우리 부모님은 어떨까 싶어 앞으로 부탁이나 질문을 받으면 천천히 친절하게 말해야지 다짐해 놓고 막상 상황이 닥치면 그렇지 못한 어리석은 자식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기계 조작 몇 번에 새로운 기능을 발견해서 내게 알려주는데 나는 늘 쓰던 기능만 쓰고 있다. 스마트한 아이들과 덜 스마트한 부모 사이에 내가 있는 셈이다. 


나는 얼마나 스마트한가?

부모 세대의 아날로그식 삶의 방식이 주는 지혜와 경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이 열어줄 더 대단한 디지털의 힘 그 가운데 서 있는 내가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엄마가 홈쇼핑 상품을 주문해 달라고 전화를 하면 아빠가 공인인증서 로그인 방법을 물어오면 키오스크 앞 여인에게 대했던 것처럼 친절하고 차분하게 설명해야겠다고. 나 역시 언젠가 기계 앞에서 당황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지금의 어설픈 스마트함을 당연히 생각하지 않아야겠다고.


당신은 스마트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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