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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직구작가 Nov 08. 2023

삼재라서!! 삼재라서??

안 믿지만 믿게 될까 봐

작년부터 삼재라고 했다.

남편과 나 그리고 아들까지 셋.

가족이 넷인데 셋이 삼재란다. 그래서 어쩌라고?

올해는 중간에 낀 삼재니 더욱 조심하라고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고 생각했다.


11월이 시작되자마자 딸이 A형 독감에 걸렸고 남편 그리고 뒤를 이어 나까지 릴레이 감염이 되었다.

전신 근육통과 고열에 시달리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침대에 누워있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삼재라더니 그래서 정말 올 한 해 조용하지 않게 지나가는 걸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연초에 전세 보증금을 못 돌려주겠다는 정신 나간 집주인을 만나 한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4억 1천만 원이라는 돈을 돌려줄 능력이 되지 않아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던 뻔뻔하고 대단한 목소리를 핸드폰에 저장해 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 온 집 위층에는 정신병자에 가까운 발망치 모녀가 살고 있다. 심야시간에 돌아다니는 코끼리 모녀로 인해 우리는 밤마다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들의 노후된 에어컨 실외기 소음으로 여름 내내 집이 아닌 밖에서 시간을 보낸 덕에 전기요금이 다른 집에 비해 20%나 덜 나왔다는 웃픈 이야기도 사실이다.  아파트 생활만 20년, 그동안 구축 신축 돌아가며 골고루 다 살아봤지만 이런 이웃은 처음이다. 악연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런데 그런 나의 윗집이 윗윗집에 시끄럽다고 민원을 제기하고 연락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포기했다. 상식을 넘어선 비정상을 상대하기에 나는 아직 너무나 정상적이므로 나의 에너지를 정신병자들에게 소진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이다.

 5월에는 아들의 독감, 6월에는 내가 코로나에 걸렸고 그즈음 주차장에 주차해 둔 내 차를 77세의 노인이 찬란하게 긁고 도망쳐 CCTV로 잡은 이벤트도 있었다. (그 노인은 궁색한 변명을 하며 자기 아들 부부가 치과 의사사이고 자기는 전직 공무원 출신이라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덧붙여 스스로를 더욱 추하게 만들었다)  뒤이어 10월 말 역시 주차장에 주차해 둔 남편의 차를 같은 동 주민이 너무나 넓은 범위를 깊고 무지하게 긁고 가 버려 또 CCTV로 잡아야만 했다.(나는 우리나라의 CCTV 기술력에 다시금 놀라워했다. 검거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기술 강대국의 국민임이 자랑스러울 지경이었다.)

다음 주에는 가족력으로 인해 정기적으로 다니는 유방외과 검진에서 모양이 좋지 않은 혹들이 또  발견되어 2년 4개월 만에 다시 맘모톰 시술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이번 독감 쓰나미까지 정말이지 올 한 해는 숨 가쁘게 피곤하고 정신이 없다. 

정말 삼재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사 온 이 동네 터가 우리랑 맞지 않는 것일까?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독감 확진 후 수액을 맞으니 좀처럼 생기지 않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올 한 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기분 좋은 일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부정적인 것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지는 것 같아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새로운 학교에 전학한 딸아이는 정말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났고 전학 오자마자 학급 임원이 되어 누구보다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같은 유치원을 다닌 친구들이 학교에 많은 까닭에 적응을 빠르게 한 듯하며 1학기와 2학기 상담에서 모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의 직장생활도 순항 중이고 나 역시 아이들을 케어하고 집안일을 하는 데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다.  

딸아이는 본인이 원해서 스스로 응시한 영재원 시험에 합격하였고 나는 파트타임이긴 하지만 10년 만에 다시 아이들을 가르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바라던 일이었고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수업을 준비하면서 설레고 즐거웠던 기억이 다시금 떠 오른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감사함을 왜 이제야 다시 떠올리는 것일까.

새해 첫날, 진도를 시작으로 통영, 거제, 부안, 무주, 부산, 신안, 고흥, 제주까지 우리 가족은 길고 짧은 여행을 통해 그 어느 해보다 재충전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휴대전화 사진첩을 천천히 훑어 가며 살펴본 우리의 표정은 정말로 즐겁고 신나 보이며 모든 여행지에서 잘 먹고 잘 쉬었던 것으로 그려진다. 

시댁과 친정이 가까운 까닭에 주말이면 어느 곳이든 찾아 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아이들과 공놀이를 즐겼다. 동생네 가족이 시간이 되면 그들과 시누네 가족이 시간이 되면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손주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신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공경할 줄 알고 사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은 그들 스스로 배우며 깨우치고 있는 중이다.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이 일상을 나는 왜 감사하다고 느끼지 못한 것일까? 삼재를 운운하며 내게 드리운 불운의 그림자만을 붙잡고 늘어진 순간이 부끄럽다. 하루에도 좋은 일과 덜 좋은 일, 나쁜 일과 더 나쁜 일이 수도 없이 스치는 것이 인간사인데 소중한 나의 일상을 삼재라고 하는 미신에 의탁에 통째로 1년 혹은 3년을 묻어버리려 했음을 반성한다. 아직 50일이나 남은 소중한 2023년을 삼재라는 두 글자에 묶어 쉽사리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누구를 만나도 나의 하루는 한 달은 그리고 일 년은 나만의 시간이고 값지고 의미 있는 순간들임을 명심해야겠다.


'9년을 주기로 온다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삼재는 어쩌면 살면서 너의 주변을 좀 더 세심히 살피고 조심하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굳이 삼재라서 내게 일어난 달갑지 않은 일들이 필연이라 받아들이기보다 조금 더 신경 쓰고 조심해서 잘 살아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모든 일에 뜻이 있다고 믿는다. 내게 일어난 지금까지 여러 일들이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며 나아가 성장시키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음을 안다. 앞으로 살면서 몇 번은 더 만나야 할 삼재라는 구간을 슬기롭고 영리하게 해석하고 싶다. 안 믿지만 믿게 될까 봐 써 내려가는 오늘의 기록이 언젠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우스갯소리로 남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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