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톰 홀랜드가 주연한 스파이더맨 "홈" 시리즈를 모두 영화관에서 봤지만 뭔가 한두 가지가 빠진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선명했기에 보면서 주인공의 곁에 다가가 말리고 싶기도, 위로해 주고 싶기도 했다. 물론 영화산업에서 사골국물을 다시 우려내서는 같은 맛과 감동을 줄 수 없음을 알지만 기존의 "홈" 시리즈의 1,2편은 단순히 이색적인 소재, 전개를 뒤틀어버리는 반전에만 집중한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노 웨이 홈'을 보면서 오랜만에 스크린 너머의 스파이더맨을 응원했다. 피터 파커의 진심을 몰라주는 이가 미웠고 그 마음을 이용한 이의 행동에는 분노했다. 그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았다. 스파이더맨이 거쳐야 할 시련. 캐주얼한 영화를 만들고자 빼버린 그 시련을 밀린 이자까지 더해서 받아내기 위해 사채업자 여럿이 찾아온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스파이더맨의 시련은 본인의 정체가 탄로 나면서 시작됐다. 거기에 미스테리오를 죽인 범인으로 몰리면서, 피터는 사생활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 시간을 되돌릴 것을 부탁한다. 타임 스톤이 사라진 세상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의 대안으로 피터의 정체를 세상 사람들에게서 지우는 주문을 걸게 된다. 결과적으로 주문은 잘못되었고 멀티버스에서 피터의 정체를 아는 존재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게 된다.
닥터 옥토퍼스와의 재회는 사실 반가움 그 자체였다. 개인적으로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빌런이었다. 피터의 재능을 알아봤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을 가졌으며 마지막에는 괴물이 된 자신을 보라보는 눈을 뜨면서 과오를 짊어지고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사실 나는 닥터 옥토퍼스를 보고 두근두근 긴장하기보다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그린 고블린, 일렉트로 등 친숙한(?) 빌런들이 하나 둘 나타나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될 것을 알렸고 나는 그들이 과연 어떻게 스파이더맨을 괴롭힐지 궁금해졌다.
빌런들은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가 아닌 피터 파커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고 나는 의외로 싱겁게 빌런들을 저지하는 전개에 당황했다. 나는 이 전개와 속도에 다른 꿍꿍이가 있음을 짐작했고 실제로 이때가 "홈" 시리즈의 스파이더맨에게 진짜 시련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첫 시작이었다고 본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이 잡아서 가둔 빌런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을 본래의 세상으로 보낸다면 숙명적으로 죽음을 당할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치료하기로 결정한다.
사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그의 생각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굳이 왜?'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것이다. 억지스러운 딜레마는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고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할 수 없게 하는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스파이더맨 영화가 7편이나 있었기에 더 이상 매끄러우면서 신선한 전개가 어려웠을 것임을 짐작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물론 그다음에도 '혹시나가 역시나'하는 장면들이 몇몇 연출된 것은 맞다. 믿음을 줬던 이들의 배신, 주변 사람을 위태롭게 만드는 안일함. 주인공에게 시련을 주는 여러 장치들이 뻔하게 작동하면서 흘러갔지만 막바지에 등장한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가 치트키였다. 짐작하고 있었으면서 웃음을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진정 사랑받는 스파이더맨이 어떤 시련을 거쳤고 또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 알려주고 또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그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벤 삼촌은 방황하는 피터 파커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을 남긴다. 정말로 큰 힘을 가진 것 자체만으로도 그 책임은 아랑곳 않고 주인공을 찾아온다. 주인공은 그런 부담감으로 방황하고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는데, 삼촌의 죽음이 자신의 사소한 복수심에 기인한 것을 깨달은 스파이더맨은 좌절한다. 바로 이 서사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시리즈는 노 웨이 홈에 와서야 스파이더맨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시련을 이야기에 담았다. 스파이더맨은 멀티버스에서 유입된 빌런들의 악행 뒤에는 상처가 있음을 알았고 숙모와 뜻을 맞춰 이들을 고쳐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숙모를 잃고 좌절하게 된다. 관객들은 그 무거운 분위기에서 스파이더맨이 갖는 큰 책임의 무게를 실감하고 피터 파커라는 청년이 풍기는 쓸쓸함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스파이더맨을 관통하는 것은 단순히 손목에서 나오는 거미줄이나 벽을 타는 것이 아니다.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시민들의 크고 작은 고충들을 해결하는 히어로임과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그 슬픔을 이겨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청년 피터 파커. 이 두 가지 서사가 제대로 관통하는 스파이더맨을 우리는 정말 사랑하고 아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