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볼일을 마치고 느낀 점
12월 어느 날의 이야기
전날 서울에서 있었던 일이다.
늦은 나이에 취업을 한 누나의 전셋집을 구하는 걸 돕기 위해 나도 서울로 올라갔다. 우리 수준에서 돈을 꽤 올려서 알아봤음에도 마음에 썩 드는 집들은 없었다.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기에 그중에서 가장 나은 집을 골라서 계약을 진행했다.
우리는 보증금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이외에 보증보험에도 가입하려 했으나 전세가가 오히려 매매가보다 높은 상황이라 어찌 될지 모른다는 부동산의 답변
하지만 요즘에는 다 이런 상황이라 이 정도로 계약하자는 게 결론이었고 우리는 인터넷에 전세계약, 오피스텔 계약 등을 쳐가면서 그나마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챙기고 가계약금을 지불하며 첫 단추를 꿰었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전날에 있었던 일들을 사무적으로 나열하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집을 구하는 상황에서 느꼈던 경제적 박탈감과 상대적 빈곤감도 분명 원인이라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누나와 나는 왜 이렇게 어리고 유약한가'에 대해 생각이 많은 밤이었기 때문이다. 30을 넘어선 나이에 안절부절못하고 긴장만 하는 것인지 한심하기도 했고 우리가 파악할 수도 제어할 수도 없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불행들에 대해서 너무 매몰돼버린 것 같은 모습에 안타깝고 괴로웠다. 이런 것들도 당연히 감수해야 할 위험이라 볼 수 있는 것인가?
누군가 작정하고 우리를 기망하려 한다면 어딘가 어수룩하면서도 친절한 부동산 직원, 오랫동안 거주했고 여전히 잘 관리된 집의 세입자, 그리고 근저당 설정 없이 공실률이 낮은 개인 소유의 강남 오피스텔. 이 모든 조건에도 우리는 사기를 당할 수 있다.
내가 100만 원짜리를 고르는 것도 아니고 억을 넘어서는 단위가 오고 간다는 생각에 내 불안은 극대화되고 아무리 리스크를 낮춰도 제로가 아니고서는 억이라는 단위 앞에서 다른 수치는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불안을 떨쳐내는 방법은 없을까? 주변을 살펴보면, 누가 봐도 위험한 조건에 당사자는 사기를 당할 거라는 생각조차 않지만 결국 아무 문제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알아보고 잘 준비했으니 걱정이라도 말아야 하는 게 맞는 것인가? 아니면 안절부절못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하나라도 더 찾아보려는 게 그냥 내가 바꿀 수 없는 나의 기질이라 여기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대부분은 외부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아무리 준비하고 알아봐도 이것들을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짜증 나고 어처구니가 없다. 이것이 자유로운 시장경제인가? 이것들을 줄여나가는 게 누군가의 생존권을 위협받는다고 견제받아야 할 일인가?
집을 계약하는 방식이 정말 생각 이상으로 후진적이라 생각하며 내 불안을 오롯이 글에 담아 이곳에 버리려 한다.
동일한 외부의 불확실성에 불안을 느끼는 정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서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늘 걱정하고 불안의 씨앗을 마지막까지 펼쳐보는 게 나의 습관 아닌 습관이다. 어쩌면, 우리 가족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그런 마음과 자세가 분명히 우리 가족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삶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런 자세를 조금만 고쳐보려는 것조차도 알게 모르게 안정감을 해칠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작은 변화마저 시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 벗어나려 해 봐도 홈이 없는 경사진 벽을 오르는 것처럼, 다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런 삶을 과거로부터 이어왔기에 나는 작은 것들에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고 간단한 선택마저 효율적으로 하려는 강박이 심해졌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을 떠나서
아무리 경계하고 조심스럽게 살아가더라도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은 너무도 쉽게 그것들을 깨부수고 찾아온다.
잘 대비했음에도 이를 뚫고 찾아올 불행을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런 고민을
하는 나 자신이 그냥 불행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