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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타 Nov 21. 2022

탈출구인가, 비상구인가

독일-한국, 두 사회를 오가며 알게된 것

출판사에 다니는 미진은 요새 식용 개 사육을 금지하자는 민원을 넣거나 유기견을 후원하느라 분주한데, 몇 달 째 아이스크림으로만 끼니를 때우고 있다. 능력 있는 3년차 신입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후배는 밤이면 침실 벽에 프로젝터를 쏴서 미드를 보고 번아웃 증후군을 치료하려고 병원에 다닌다. 엄마의 아픈 허리는 잘 낫지 않고, 아빠는 이런저런 이유로 직장을 관두게 되었지만, 밀라논나와 고미숙의 유튜브 방송이 이들을 즐겁게 해준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서울에 와서 만난 내 사람들이 저마다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는 얘기이다. 저마다의 힘듦과 이상함을 잘 달래가면서.


나는 지난 한달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장소들도 훑고 다녔다. 노원과 양재, 성수와 충무로와 춘천과 부천. 공연장과 막걸리집, 공원과 와인바. 시야와 활동반경이 넓은 건 내 강점이다. 줌 인보다 줌 아웃이 익숙하다. 그런 마음으로 외국생활과 고향방문, 출장과 이사를 반복하며 이제 삼십 대 중반, 이 문장을 속에 담고 사는 중. ‘가치는 상대적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여전히 투철한 코로나 방역 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땡볕에서도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하루에 몇 차례씩 방역 당국의 문자를 받는다. 요즘 스물에 열아홉은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야외에서는 원래 안 썼던 독일에 있다 오니 이런 풍경을 낯설게 보지 않을 수 없다. 전염병 같은 보편적 현상에 각 사회가 전혀 다르게 대처한다는 것을 실감하며 절대적으로 옳은 것, 맞는 것의 사고 기준이 흐려진다. 특정 시스템에 잘 설득되지 않는 사람이 된 것도 같다.


재테크에 대한 각종 상식과 열정이 널리 퍼져있는 것도 쉽게 알아차리게 되는 이곳의 특징이다. 내가 사회초년생이던 10여 년 전만 해도 재테크가 기혼자나 부모, 중장년층의 행동 양식이었던 것 같은데, 이젠 젊은 1인 가구에게도 필수 자기계발 활동이다. 게다가 팬더믹 불과 2-3년 동안에 주식하는 인구가 10배 늘었다고 한다. 독일에도 부동산으로 생활비를 벌어들이고 미국 주식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내 주변에는 50대에도 월세 살면서 매년 여름휴가 때 저축을 다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더 이상 관조하지만 말고 세태에 참여해보기로 마음먹은 나는 조금 공부한 뒤에 하나 뿐인 입출금 예금통장을 활용해 ‘그린히어로즈’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다. 겨우 월 5만원씩 붓는 거지만 시작이 반이다. 나는 과연 수익을 낼 수 있을까? 또 뭘 해야 되나? 역시 온전히 설득되지 않았다.


웬만한 일에는 크게 놀라지 않는데, 최근 꽤 충격을 받았다. 미국의 대용량 소비주의 문화를 대표하는 리테일 프랜차이즈 ‘코스트코(Costco)’의 매출액 세계 1위 매장이 바로 서울에 있다는 사실에. 내가 이사 온 양재동에 있는 매장이 한동안 1위였고, 세종시 매장이 최근 그 자리를 탈환했다. 코스트코 본사 회장은 감사의 눈물까지 흘렸단다. 2022년 기준, 서울은 세계에서 33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코스트코에서 쇼핑할 소비자가 더 많은 도시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런 1등은 별로인데.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곳’에서 박리다매의 현현이자 소비주의의 화신인 코스트코에 대한 사랑이 뜨겁다. 서울경기 주민들은 어쩌다가, 대용량 쇼핑을 이렇게 많이 하게 되었을까? 이 회사는 2013년에 야심찬 유럽 진출 계획을 발표했지만 각종 규제 때문에 독일에는 아직까지 매장을 못 열었다. 거긴 무슨 규제가 얼마나 있는 거지? 왜?


한국이 낫다, 독일이 낫다. 이런 식의 비교대조는 이제 지겹다. 그렇게 표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음을 서서히 깨달았다. 총체적으로 입체적으로 두 사회는 너무나 다르고, 장단점은 뒤섞여 있어 외따로 취할 수 없다. 가방끈과 독서력이 남부럽지 않은 나는 차이를 설명할 순 있다. 그러나 설명하는 것과 살아내는 것은 퍽 다른 문제이고, 설명된다고 해서 다 합리화되는 것도 아니다.

탈출구나 비상구를 찾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한다.

그동안 나는 그 중 어디로 다녔던 걸까?


나에게 꼭 맞는 사회는 없을 것임을 이제 안다. 어느 곳에선 너무 크고, 또 다른 곳에선 너무 작고.... (이미지 ©Disney)

두 사회를 부유하듯 오가며, 걸쳐 있으면서, 경계를 맴돌면서 자주 멀미를 느껴왔고 앞으로도 느낄 것 같다. 나무 둥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뒤, 상대적으로 몸이 너무 커졌다 작아졌다 해서 불편한 여행을 하는 원더랜드의 앨리스처럼, 결국 내게 꼭 맞는 사회는 없다는 것이 지금의 결론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도 잘 맞지는 않을 것이다.

가치의 상대성을 매번 실감할 것이다. 절대적인 옮음이나 맞음이 이 세상에 의외로 드물기 때문에 지금 나를 둘러싼 사회에 너무 애써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지금의 결론이다. 나의 욕구와 감각과 고유성에 좀 더 민감해도 된다. 그것들을 표현하며 살도록 스스로를 좀 더 풀어줘도 된다.


아까 오후에 오랜만에 우쿨렐레를 띵가띵가했다. 이 날렵하고 맑은 나무 악기에는 하와이의 조개 문양이 박혀있다. 미국의 작은 공장에서 만들어 독일로 왔다가, 이제 나를 따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 C코드는 어디서나 C코드. 통일된 음계 시스템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그 코드를 잡는 손가락 모양은 좀 달리해도 괜찮지 않나.

"엄마가 준 알약은 정말 아무런 효과도 없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프로 한 사이키델릭 락앤롤 넘버 <하얀 토끼>.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의 라이브 영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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