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몸의 고백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리타 Dec 09. 2022

나의 아주 민감한 장치


안녕,

간밤에 새로운 칵테일*을 먹고 까무룩 잠에 들었다가

아침 알람이 울리기 15분 전

정신이 들었어.

머리가 가볍고 몸에는 힘이 좀 빠져있고.


거의 일주일 만에 글을 쓰고 싶다는 추동력,

그리고 쓸 수 있을 거라는 감각이 감지됐어.

벌떡 일어났지. 와, 이거 이상적이잖아...?


반가우면서도 씁쓸해.

이 마법도 언제나와 같이 언젠가 닳아 없어(wear out) 지겠지.

오래 만나다 결국 헤어진 아고멜라틴처럼.


억울해. 단 하루 만에 이렇게 잘 자다니. 그런 간단한 문제였어?

억울해. 리튬을 피해 다닌 긴 시간.

K는 도스를 낮게 유지하자고 했어.

하이포타이로이디즘 대 리튬의 대결.


난 문득 생각해.

내 몸이 비행기 같다고.

버튼이 80개쯤 붙은 조종실, 밀고 당기는 색색의 레버들.

반짝이는 이런저런 단추들, 적막과 압력.

좌우로 살짝 흔들리기.

금세 올랐다 금세 내려가기.


나의 정신은 자신이 이 기체의 파일럿이라고 주장해.

그 주장은 주저 없이 꼿꼿하지만

그 퍼포먼스는 너무 미숙해.

수수께끼 투성이, 실수 투성이, 혼란 대혼란.

깨닫지 못한, 깨달아도 소용없는 메커니즘.

매번 완전한 실패, 새로운 시작.


쯧, 파일럿이라면서 자꾸 존다, 저 조종석에서.

그래도 그 자릴 내놓을 순 없어.

자꾸 엇나가고 까다롭고

이제 뭐, 그리 새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딱 한대뿐인 비행기.

리미티드 에디션.


우아하게 위엄 있게 비행해내고 싶어.

나는 나를, 내 삶을.

욕망은 이상적이고, 칵테일은 필요하고.


        *

        명인탄산리튬정 150mg hs

        자나팜 0.125mg PRN

        클로나제팜정 0.5mg hs

        쿠에타핀 12.5mg h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