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이유는 둘째의 어린이집 방학이다. 아내가 곧 있을 자격시험 준비로 바쁘기 때문에 내가 둘째의 육아를 맡았다. 이제는 아이가 4살이 되면서 육아 자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 어떻게 살림까지 같이 하는 건지 그동안 아내가 참 대단했더라. 그리고 첫째의 유치원 전학 등 새로운 일들이 연이어 생기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브런치와 거리두기를 했다.
굳이 거리두기 까지 한 이유는 가족들에게 브런치를 공개하고 나서 글이 어렵고 길다는 혹평을 받은 데다가, 브런치는 구독자수와 라이킷수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아주 큰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교의 민족, 그리고 자랑의 민족인 듯, 내 구독자가 몇 명을 넘었다, 내 첫 글이 조회수가 몇천, 몇만이 넘었다는 글이 브런치에 넘쳐나고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몰려드는 부러움. 허무함.
아 우린 거리두기가 필요해.
내 글이 인기가 없다는 사실 보다, 브런치는 지금껏 유일하게 내가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종의 프로젝트였고 그 누구의 도움 없이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라는 걸 보여주었다, 그게 너무 슬펐다.
내가 기분이 울적해지니, 위로가 필요했다. 위로가 필요한데 위로를 받을 데가 없으니 위로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어느 때이든지 위로가 필요하다. 그런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마도, "다 그렇지 뭐. 힘내."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들 힘들어도 힘내면서 사는 거지." 이런 유형의 대답일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런 위로를 해줄 가능성이 더 크다. 부모님이나 형제, 배우자 등.
솔직히 어쩌란 말인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나, 위로가 듣고 싶은 사람이나. 뭐 어쩌란 것인가. 다들 힘들다는 사실을 알면 내가 힘든 게 안 힘든 게 되나? 근데 그런 말 말고 뭐 때문인지도 모르는데 또 거기다가 뭐라고 해줄 수가 있다는 말인가.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도 참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니고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들도 나 같은 위로가 필요한 거다.
당연히 참고 사는게 아니고 당연하게 위로받고 나를 위해 살아야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번아웃이 오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사람이 예민해지고, 코로나 블루스가 오고, 가족들끼리도 고성이 오가고,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세상 어디에도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나, 나를 위한 곳은 없는 것 같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게 되고 당연하지 않은 게 당연한 게 돼야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고생하고 노력했지만 이루지 못한 나의 좌절, 나를 몰라주는 서운함, 아무도 없는 쓸쓸함,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 공동체 속에서의 소외감, 모두 위로받아야 마땅한 내 감정들인 것이다.
솔직히 대부분의 경우는 어떤 위로의 말을 들어도 그 순간 당장 평안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친구를 만나 술 한잔 기울여도, 책을 읽어도, 음악을 들어도, 무작정 길을 걷거나 드라이브를 해도, 어쩔 땐 그런 행동들이 더욱 내 감정을 북받쳐 오르게 해서 펑펑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차라리 그게 시원하기는 하다.
"익숙함에 속아서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은 비단 가까운 사람, 배우자나 연인, 부모님, 친구, 형제, 자녀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포함되는 것 같다. 이 세상에 나처럼 나한테 익숙하면서 내게 소홀한 존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오늘은 내 마음을 챙기고 싶다.
나를 위로하는 소소한 행복들을 누리며 살고 싶다. 문제는 그게 쇼핑이라는 게 좀 문제인데. 농담이고, 건강한 취미, 즐기는 운동, 안전하고 신선한 먹거리,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 끝없는 배움의 즐거움 등 나만의 멋지고 쿨하고 고고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싶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그런 삶이 아니라.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그런 삶. 누가 인정해 주는 삶이 아니라, 내가 만족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위로가 필요하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감정과 불안의 근원은 모두가 다르기에 모든 위로가 평안을 주지는 못해도, 위로는 소망이 되고 씨앗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게 해 준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이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힘내 볼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이다. 모두 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내가 가장 행복하기 위해서.
요즘 대형 건물 어디를 가나 발열 체크기가 있다. 얼굴을 들이밀면 엄청 큰소리로 나의 체온을 판정해준다.
"체온이 정상입니다!"
마치 이 사람은 들어가도 된다는 걸 모두에게 알리는 일종의 의식 같다.
어제 아내와 장 보러 홈플러스를 갔더니 손소독제에 손을 가져다가 대면 손목의 온도를 동시에 재주는 기계가 있었다. 역시 큰소리로 옆에 서계신 직원분께 나의 정상여부를 알려주었다.
나만 이렇게 힘든가, 왜 다들 괜찮은데 나만 힘들지, 왜 다들 잘하는데 나만 어렵지, 나는 왜 잘되는 게 없고 잘하는 게 없지, 이런 마음이 들 때. 오늘은 꼭 위로가 필요할 때. 누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