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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Feb 18. 2021

한동안 글쓰기를 쉬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지.

무슨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느라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티 블렌딩 2급 과정이 끝나고 나니 왠지 그냥 조금 쉬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서 쉬는 사람이 무섭다. 작은 성취도 크게 느껴진다. 어쩌면 내 자존감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거라 위로해 본다.


원래는 조금 쉬고 티 블렌딩에 대해 이것저것 쓰려고 했는데, '굳이?' '겨우 2급이?' '자격을 딴것도 아니고 수료만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1급 자격 취득 후로 미루기로 했다. 그러나 어떤 사업 아이템이든 글감이든 이 세상에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듯, 어제 서점에 갔더니 그동안 찾아보기도 힘들던 차에 대한 책, 수필, 시집만도 4권이나 발견해서 잔뜩 사들고 왔다.


갑자기 차에 대한 트렌드가 생기는 건지, 내가 차를 공부하니까 그런 게 더 눈에 잘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초판들이 2017년에서 2020년 사이인 것 보면 새로운 트렌드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수업을 듣는 연구원에서 너무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배출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또 굳이 핑계를 대자면, 새로 산 스마트폰에 적응하느라 이것저것 할게 많았다. (할게 많았다는 것은 액세서리를 많이 샀다는 뜻이다.) 게다가 삼성에서는 초기 구매자 혜택이라고 이것저것 얹어주기 바쁘니 마치 이번 달에 있는 내 생일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원래는 둘째를 출산하고 샀던 아내의 핸드폰이 만 3년이 되자 느려지고 용량도 터지고, 이것저것 안되길래 새로 나온 것으로 바꾸자고 체험해보러 갔다가, 내가 반해서 둘 다 바꾸었다. 나는 사실 피처폰 시절부터 한 폰을 2년 약정기간도 다 채우는 것이 힘들었다.


기술적으로 엄청나게 새로울 것도 없고, 그저 UI, 카메라 기능 같은 사소(하지만 가장 자주 쓰는)한 기능들만 바뀔 뿐인데 이상하게 새로운 기계는 새롭다. 아무래도 자주 쓰는 기능들이라 더 그럴 수도, 아니면 그만큼 기업에서 돈을 벌고자 사소한 것에 대한 연구와 노력을 많이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내 성격이 그러거나. 오히려 자기는 됐다는 아내를 설득해서 커플폰으로 바꾸었다.


아내와 약혼해서 신혼 초까지 삼성 갤럭시 S4 기종을 함께 썼었다. 지금 갤럭시 S21 기종을 함께 쓰니 결혼한 지 17년 차쯤 되는 느낌이다. 왜 중간에 시리즈 이름을 바꿔가지고서는 사람 괜히 늙어 보이게 한다.




요즘 우리 딸은 하루에도 두세 번씩 장래희망이 바뀐다. 오전에는 의사 선생님이, 점심에는 디자이너가, 저녁에는 콘텐츠 디렉터나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 한다. 한창 꿈이 많을 나이 이제 7살. 나도 그렇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꿈이 바뀐다. 한창 꿈이 많을 나이다. 그런데 세상은 이제는 꿈을 갖지 말고 안주해야 될 나이라고 한다. 근래에 들어서 나에게 꿈을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엄마, 그리고 책 <린치핀 (Linchpin), 세스 고딘 저, 윤영삼 옮김. 2020. 라이스메이커> 뿐이다.


내게 절대 안전한 핵벙커 같았던 본가는 요즘 지뢰밭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조류독감에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로 인한 사업 부진 등등. 아버지의 심기와 정신건강이 매우 안 좋아 보이신다. 이럴 때는 진작에 번듯한 직장에 안정적인 수입이었으면 어떨까, 어쩌면 아버지의 깊어지는 수심이 모두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은 아닐까 하는 죄송한 마음뿐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이나 아버지는 절대 안 될 거라고 했던 분야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기도 하다. 바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아니, 그냥 이렇게 마흔이 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내가 진짜 해보고 싶은 일 한번 정도는 질러보고 싶기도 하다.


아내가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 "여보, 아버님이 바라시는 일은 내가 열심히 해볼게. 자기는 자기 해보고 싶은 일 해. 자기는 그게 더 잘 어울려. 그리고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정말 든든하고 현명하고 사랑스러운 아내다. 그런데 딸내미랑 똑같이 마음이 하루에도 두세 번씩 바뀌어서 문제다. 아침에 저렇게 말하고 저녁에 이러다가 우리 굶어 죽는 거 아니냐고 탄식할 때면, 아까 그 말은 뭐였나, 남편 위로하는 무슨 책이라도 읽고 연습하는 건가 싶다. 여자의 마음은 정말 갈대다.




책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 말 그릇. 김윤나, 2020. 카시오페아.>를 읽고 나니, 함부로 말하는 것, 글 쓰는 것에 대한 조심성이 생겼다. 어느 날 무슨 대화를 하다가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그래도 이런 거 다 브런치에 쓰기라고 하지......"


너무 브런치를 일기처럼 쓴 것은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인기가 없었나 싶어 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브런치랑 SNS는 명백히 다른 건데.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일상적인 사진을 올릴 때 빼고는 SNS를 한 적이 없다. 어쩌면 난 정말로 브런치 글과, SNS 게시물을 혼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통 브런치에 글 하나를 발행하면 30여 명이 읽는다. 그리고 15-20개 정도의 라이킷을 받는다. 비율적으로만 보면 꽤 괜찮은 라이킷이 아닌가 스스로 만족했었다. 일단 읽기만 하면 대부분 좋아하는데 단지 안 읽는 게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해도 50명은 읽을 텐데 말이다. 물론 페이스북에서도 게시글에 좋아요는 10개 남짓이다. 나는 그게 내 얼굴 때문인 줄 알았는데 글에도 문제 있나 보다.


어디선가 댓글로 활발히 소통하는 것도 구독자를 늘리는 좋은 방법이라고 읽었다. 그런데 또 댓글 때문에 상처 받은 사람의 글도 보았다. 나는 사실 댓글을 열지 않는다. 악플이 무서워서도 있지만 가장 무서운 건 무플이었다.




이제 다시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서 내 생각을 쓰고 또 널리 공감이 되고 또 널리 읽히는 글도 쓰고 싶다. 원래 새해는 다짐의 시간 아닌가. 설날이 지난주였으니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시 글쓰기에 열중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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