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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Aug 08. 2021

"면접에서 떨리면 좋은 징조야"

떨리는 심장박동을 역이용하는 태도 전환

오전 10시30분 딸과 또한번 카카오 페이스톡을 했다. 면접시작 30분 전이다.


오전 7시45분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더니 정신이 깨지 않는군요'하고 카톡 문자가 왔고, 8시30분쯤에는 페이스톡을 했다. 40분정도 통화를 했다. "오늘은 얼굴이 하나도 붓지 않았다", "화장이 잘 되었다", "합격할 거니까 그냥 편안히 대화하면 된다" 등등의 말을 하며 딸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다. 그렇게 끊은 지 1시간 20분이 지나 딸이 다시 카톡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취업면접 때마다 나는 일본에 있는 딸과 영상통화를 한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둘셋 하나둘셋" 이렇게 마이크의 소리 테스트하듯 카메라 화면 테스트를 해주는 것이다. 


"왼쪽 눈썹이 짧다. 더 길게 그려야겠어."

"눈이 좀 부었는데 아이쉐도 진한 걸로 눈꺼풀 아래 부분 칠해보면 어떨까?"

"머리를 한쪽만 귀 뒤로 넘기게 낫지 않나?"

"머리 위 여백이 너무 많아. 카메라를 조정해봐."

"어깨를 펴고 허리를 의자에 더 붙이고 턱은 좀 내리는 게 좋겠다."

 

여러가지를 체크한 후 오케이 사인을 보내면서 가장 중요한 말을 남긴다. 


"음, 좋아! 완벽해! 이런 재원을 어디서 모셔갈지 그 회사는 운이 엄청 좋네."




이미 카메라 점검 다했고 면접이 곧 시작될텐데 딸아이로부터 다시 페이스톡이 온 것이다.


"엄마, 너무 떨려요."


"왜 이러시나. 면접 한두번 하는 것도 아닌데."


오늘이 3차 최종면접이다. 

2차면접 때 단독으로 1시간10분정도 면접을 하며 철두철미하게 하나하나 체크 당했으니 오늘 하는 30분 면접은 비교적 가볍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딸이 여기저기 정보를 확인한 결과 1시간짜리 2차면접이 가장 어려운 고비라고 했다. 그걸 통과했으니 3차면접은 비교적 쉬울 것 같았는데 역시 최종면접이 주는 무게감이란 게 있는 가 보다. 인사부장과 인사담당 임원 2명이 면접관으로 나온다고 했다.




일본 취업이 우리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자리가 많아서 노력하면 취업 기회 잡기가 더 쉽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취업 준비 과정을 보니 일본 취업이 우리 보다 오히려 더 까다로운 면이 많았다. 올해 아들은 한국에서, 딸은 일본에서 취업 준비를 하니 적나라하게 비교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서류전형, 필기전형, 면접전형 3개 과정으로 진행된다. 면접이 3차까지 가는 경우도 있지만 1회 또는 2회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단순한 절차이다. 그래서 취업 전형 과정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취업일정이 대부분 공개되고 합격자를 '발표하는' 방식이어서 전형을 통과했는지 탈락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공정성을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명확하고 심플하다. 하지만 인재를 상세하게 테스트할 수 있는 디테일한 과정이 상당부분 축소되어 있다. 선발인원이 수십명 또는 수백명에 달하는 대기업조차 하루에 면접을 몽땅 치루는 걸 보고 한국의 취업 면접에 상당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기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비교적 복잡하고 치밀한 과정을 통해 인력을 선발한다. 우선 서류를 제출하면서 우리나라 필기시험에 해당하는 인적성시험을 치른다. 이 과정에서 영상 자기소개서를 함께 제출하거나 AI 영상면접을 보는 경우도 있다. 많은 기업이 서류와 필기를 함께 보지만, 어떤 기업은 서류와 동영상 소개서 등을 심사한 후 통과자들에게만 필기시험을 보도록 한다. 서류, 필기를 통과하면 면접을 보게 되는데 면접을 보는 중에 더 상세한 지원서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면접은 스케줄 표가 나오고 자기가 원하는 시간을 예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니까 면접은 개별적으로 날짜와 시간이 모두 다르다. 보통 1인이 30분정도 개별면접을 본다. 인사담당 부서, 지원분야 담당자나 책임자, 임원 등의 순서로 면접이 진행된다.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최소 부장급 이상이 면접관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1차 또는 2차에서 비교적 젊은 직원들이 면접관으로 나온다. 대부분 1대 1 면접으로 진행되고 2명이 면접관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최종면접에는 임원급이 나온다. 이렇게 면접만 기본이 3차이고 4차까지 진행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러니까 회사의 입장에서 '이 지원자가 우리 회사와 맞는지,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도전의식과 열정을 갖추었는지' 등을 요리조리 상세히 뜯어보는 과정을 세번 또는 네번을 거친다. 지원자 입장에서 이 과정을 여러번 겪다보면 지쳐 나자빠질 지경이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이렇게 진행하니 어쩔 수가 없다. 또 거기다가 합격자를 발표가 아니라 '통보하는' 방식이어서 합격했는지 모르고 마냥 기다리는 경우가 있어 진이 빠진다. 불합격했을 때는 연락조차 못받아 허탈감에 빠지기도 한다. 


딸은 어느 기업은 서류와 필기에서, 어느 기업은 1차면접에서, 또 어떤 때는 4차 면접에서 떨어지는 결과를 맛보았다. "안될 곳은 미리부터 떨어뜨려 주면 좋겠다"고 말하는 딸아이에게 나는 "면접을 보게 해주는 기업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면접이야말로 경험이 엄청 중요하니까 많이 해볼수록 좋다"고 다독여왔다.


일본은 4학년 2학기가 되기 전에 대부분의 채용이 진행되기 때문에 최종합격해서 취업할 곳을 정해놓은(일본에서는 이것을 '내정'이라고 부른다) 딸의 친구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딸의 마음이 조급해지는 게 보인다. 딸을 다독이고 안심시키는 일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유학생이란 게 핸디캡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본인 4학년생들과 경쟁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올해 안되면 내년에 하면 되고, 대학원 진학도 있고 선택지는 많으니 너무 불안해 할 필요가 없어. 일찍 된다고 꼭 좋으란 법이 없잖아. 더 좋은 기업에 될 수도 있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몰라. 엄마도 그랬어. 맨 나중에 합격한 곳이 가장 좋은 곳이었어. 그냥 기회가 있을 때까지 해보는거야."         




온라인면접을 여러차례 보면서 딸이 나름 면접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최근에 안하던 "떨린다"는 말을 한다. 최종면접이라 정말 잘하고 싶은 부담감이 심장을 두근거리도록 만드는 것 같다. 

  

"긴장이 많이 되는 구나. 그런데 말이야. 떨리면 머리가 더 잘 돌아가서 좋을 수도 있어."


나는 내 수준에서 최선의 말을 한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봐"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어 봐" 같은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아무 효과가 없다는 걸 안다. 나도 경단녀 벗어나려고 면접께나 본 사람 아닌가. 평가를 받는 것, 그 평가가 인생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라면 초조하고 긴장되는 건 당연하다. 50대가 되어서 면접을 봐도 역시 긴장되고 떨렸다. 내가 면접에서 평가자였던 적도 여러번 있었지만 평가 받는 대상자가 되면 역시나 긴장감이 치솟았다. 사회에 첫발에 내딛고자 취업준비를 하는 20대 딸은 오죽할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위축되지 말고(도망가지 말고) 떨리는 걸 이용하는(싸우는) 생각의 전환이 중요하다.  


"심장이 빨리 뛰면 혈액공급이 빨라져서 뇌가 아주 잘 돌아간대. 그러니까 면접을 더 잘 볼 수 있어. 걱정마."



 

긴장될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리 몸에서는 '투쟁 도주 반응'이 나타난다. 숲에서 호랑이를 만났을 때 극도의 긴장감이 생기면서 싸울까 도망갈까 결정해야 하는 위급 상황에서 나타났던 신체 반응을 말한다. 현대 인류는 호랑이 만날 일은 없지만 긴장감이 높아지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싸울까 도망갈까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이 때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다. 몸의 여러 곳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보낸 메시지를 받아 긴급조치를 하기 시작한다. 심장박동과 호흡이 빨라지고 산소가 많이 공급된다. 간은 근육으로 에너지를 방출해서 몸이 최적의 상태가 되도록 한다. 이 때 소화계는 활동을 잠시 멈춘다. 입안이 바싹 마르고 식욕이 사라진다.


긴장감 넘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싸워보겠다, 해보겠다는 도전을 마음 먹게 되면 사냥감을 노리는 마음가짐이 된다. 쫓기는 쪽이 아니라 사냥감을 향해 달려가는, 싸우는 쪽이 되는 것이다. 싸우는 쪽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마음가짐이 된다. 그러면서 말초혈관이 확장되고 심장은 더 빨리뛰어 산소를 실은 혈액이 팔다리와 뇌로 보내진다. 평소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같은 상황에서 겁이 나면 두려움에 휩싸인다. 두려움은 달아나는자, 패배의 가능성이 높은 자의 통제모드로 몸을 전환하게 한다. 몸이 패배에 대비하는 것이다. 달아날 길이 없고 강한 상대와 싸우는 중이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교감신경계가 덜 활성화된다. 말초신경은 수축되고 심박수가 느려진다. 몸 전체에 공급되는 혈액도 줄어든다. 패배로 신체가 손상되었을 때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이 급증한다. 면역계가 부상과 감염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심리학자 웬디 멘데스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을 도전으로 보느냐, 위협으로 보느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실험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타나는 신체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웬디 멘데스는 트리어 사회 스트레스 테스트(Trier Social Stress Test)라는 매우 힘든 과제를 피험자들에게 주었다. 15분동안 엄격한 심사위원들 앞에서 공개 연설과 암산을 시켜서 투쟁 도주 반응을 유발하는 연구이다. 


실험을 하며 일부 피험자들에게만 신체변화에 대해 미리 설명을 했다. 테스트를 하는 동안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 같은 불안증세가 오히려 좋은 징조이며, 이럴 때 산화된 혈액이 뇌와 근육으로 전달되면서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떨리면 여러분의 능력을 더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니까 걱정하지 말라"하고 알려준 것이다. 


다른 집단은 스트레스 요인을 무시하라("떨리는 것 따위는 신경쓰지마")는 조언을 들은 위약집단과 아무 설명도 듣지 않은 집단으로 나뉘었다. 


설명을 들은 집단은 이 사실을 듣는 것만으로 도전반응을 보였다. 그러니까 도망가지 않고 싸우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다른 집단에 비해 혈관이 더 확장되고 심박출량도 증가했다. 엄청 심장이 빨리 뛰고 혈관으로 피가 쏟아져 나가는 상황이다. 


또다른 연구에서 멘데스는 스트레스가 심한 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가짜 시험을 치르게 했다. 한 집단에게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했다. 이들도 마찬가지의 생리적 효과를 얻었다. 시험점수도 통제집단에 비해 더 높았다. 가짜 시험뿐 아니라 3개월 뒤 치른 진짜 입학시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적의 치유력>의 저자 조 머천트는 멘데스의 연구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멘데스의 연구는 스트레스에 지배당할 필요가 없으며 태도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스트레스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오전 11시40분쯤 딸에게서 다시 페이스톡이 왔다. 면접을 마친 시간이다.


"괜찮았어?" 하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딸은 면접을 볼 때마다 항상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당연한 일이다. 면접관 얼굴을 맞대고 생각과 경험을 말해야 하는 면접이란 게 정답을 맞춘 것 같은 명료한 느낌이 있을 수가 없다. 잘 본 것 같은 면접에 떨어지고 망친 것 같은 면접에 합격한 경험이 쌓이자 딸아이는 잘봤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면접관으로 아저씨하고 할아버지 같은 분이 나왔다고 한다. 부장과 임원의 나이가 50대와 60대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그분들이 너무 편하게 생기셔서 그런가? 긴장이 너무 풀려서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무슨 말인가. 떨려서 죽겠다는 딸이 어느새 이렇게 변했다. 딸은 아빠와 대화를 많이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한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아빠 연배의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에게 강한 것 같다. 아빠나 할아버지 같은 그들이 나를 좋아할 거라는 무의식적 자신감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너무 떨까 걱정했던 딸에게 긴장감을 풀게 해주었던 그 면접관들이 진정한 고수라고 생각한다. 면접보는 사람이 투쟁 도주 반응까지 일으키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그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원자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진짜 생각을 풀어낼 수 있도록 여유를 갖게 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인 것 같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지원자의 능력과 생각을 최대한 알아낼 수 있는 면접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면접관의 능력이다. 


하지만 능력있는 면접관을 못만났다면 면접자는 심장떨림을 이용하는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 '빨리 지나가라'는 도망가는 자의 자세에서 도전자로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어서와, 면접! 한번 붙어보자!!!' 



# 앞 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Igor Link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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