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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정벌레 Feb 03. 2022

거친 것과 날카로움 사이에서

내 20대를 사로잡은 괴로움 중 하나는, 사람들의 체념을 지켜보는 일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

"어차피"

"더 나은 선택이 있었을까?"

같은 모든 포기와 체념의 말을 혐오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지는 것은 그저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습관적인 말버릇이며,

자기 자신의 의지를 변호하기 위한 값싼 변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편으로는 변명하지 않고 직선으로 뻗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날끝을 내내 사랑해왔습니다.


나의 깎은 면들은 정직이고, 진실이며 가식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날카로움은 때로 주체가 되지 않아 폭력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몇년 ,  자신마저 괴롭히는 예민하고 주체가 되지 않는 이런 면을 돌보아주었던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도 싫은 이런 모습을 어떻게 견딜  있는지에 대해서요. 그는 말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유연해지고, 그런 날카로움은 무뎌지게 마련이니까

그냥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누그러질 것이라서 걱정하지 않는다고요.


나는 한편으로 고맙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죽어도 그렇게는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확신에 찬 기대를 실망시킬 내 자신을 생각하며 쓰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를 괴롭히는  날카로운 생각들에 아직 갇혀 있습니다. 그의 기대가 틀린건지, 아니면 그가 이야기한 미래에 아직 닿지 않아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도 이젠 떠났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고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요.


그러나 조금 다른 생각은 하기 시작했습니다. 위선이라고 가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이면을 보면서,  복잡한 모습들의 일부를 보며 어느  실망의 한가운데서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래, 사실 그렇지 않았는 걸지도 몰라. 거울같이 속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너머에 작은 결함같은것을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도 괜찮았던 것이라고,

변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고 

헤어짐의 이유가 사랑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고요.


그래서 내 자랑인 날카로움은 그저 거친 것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요. 양날의 검, 아니 어쩌면 손잡이까지 날붙이로 만들어진 칼처럼 그것은 날카롭기만 할 뿐, 다룰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날카로움이  자신을 수없이 깎아가며 아주 예리하게 벼려 얻는 반짝반짝한 면이라면, 그래서  자신을 비추어  수도 있는 그런 편평한 면이 만나는 가장자리라면,  예민함은 그냥 돌로  광물의 단면같은 모습이었는지 모릅니다.


별로 동하지 않는 일에는 두툼하게 앉아있다가, 그저 예민하고 싶은 무언가에 죽도록 달려드는 못난 모습이었다고요. 그저 무례한 것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고요.


여전히 이런 날카로움을 버리지는 않고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무결한 것이 아니라 무해한 것에 더 가까워지게, 매끈한 단면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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