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
파리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줄곧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었다. 이곳은 아름답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신비한 곳이라고 그리고 상대방의 얼굴을 한번 살피고 한마디 더 한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왜 이 고독하고 지독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라는 의문의 단서를 조금이라도 찾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파리행을 결정하기 전의 나는 희미해졌다 선명해지기를 반복했었고 자유를 갈망하던 나는 자유라는 틀 안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음을 자각했었다. 나는 유년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고, 대학에서는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 혹은 화가 같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7년을 그래픽 디자이너로 소규모 디자인 회사 그리고 대기업으로 옮겨 가면서 세상을 배우고, 삶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2013년 08월 18일
‘병들고 지친 감정 때문에 오늘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하루 종일 고민하고 있다.’
커리어와 통장 잔고의 무게는 내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점점 부풀어져 가는 외양과는 반대로 점점 작아져가는 내면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을 느끼고 있었다.
2013년 11월 14일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포기할 수 있는 용기’
자각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는 말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 내 꿈같은 것,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보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두꺼운 껍질을 조금씩 벗어던지고, 조금씩 나의 작고 초라해진 내면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었다.
나는 2014년 3월 박스 하나에 모든 것을 챙겨 한 대기업을 퇴사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꿈꾸던 삶으로 들어갔고,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고, 전시회도 열고, 책 표지에 내 이름을 몇 번 새겨보는 행복에 젖는 듯했지만 무명 일러스트레이터의 삶이란 게 녹록지 않았었다. 도전하고 시도한 것에 비해 돌아오는 반응은 예상과 다른 상실감에 나는 점점 균형을 잃어갔다. 열정과 초심은 퇴색되어갔고, 점점 커져가는 아집은 나를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스스로에게 고립되게 만들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