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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소녀 Oct 05. 2021

나를 붙잡은 말 한마디

"여보세요?... 거기... 생명의 전화인가요?"

"네. 맞습니다."

"저...(울먹여서 목소리가 거의 잠김) 이제 그만... 다 내려놓고 싶어요..."

(중략)

"그래도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엄마가 힘을 내셔야죠..."


전화를 받으신 상담사분은 목소리로 짐작컨대 친정 엄마 연배의 분인 것 같았다. 목소리에 엄마들 특유의 따뜻함이 배어있었다. 딸뻘인 내가 울면서 전화를 해서인지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시고 공감해주셨다. 얼굴도 전혀 모르는 분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더 평온했다. 그분은 계속해서 지친 내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려고 애쓰셨다. 그 애틋한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누구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사실 나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마치 전화기 너머에 계시는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딱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아이들을 생각하셔서라도 엄마가 힘을 내셔야죠..."


마치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이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내 모든 역할들 중에 아이들의 엄마라는 역할만은 좀처럼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내려놓기엔 아직 아이들이 너무 어렸고 그래서 더욱 불쌍했다. 극단적인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찬 채 광질주를 하고 있는 내 마음에 상담사분이 급브레이크를 걸어주셨다.


그분과의 전화를 끊을 무렵 남편이 퇴근해서 현관에 들어서고 있었다.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남편은 어딘가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모든 남편들이 <82년생 김지영> 영화 속에 나오는 공유처럼 부인의 문제에 마음 아파하고 속상해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다른 남편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 남편은 공유와는 외모도. 공감능력도. 거리가 먼 듯했다. 왜 울고 있냐며 묻지도 않고 외면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가까운 남편에게조차우울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도 그 당시에 회사일에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에 내 감정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퇴근하고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되어 지친 상태로 집에 겨우 들어섰을 텐데. 부인이 반갑게 맞이하기는커녕 울고만 있으니 아마도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나도 많이 지쳐있었고 내가 울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던 남편이 서운했다. 그 당시에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네가 집에 있고 시간이 많으니 우울증이 걸리지. 정신력으로 버티면 다 이겨낼 수 있어. 애들 엄마인데 견뎌야지!" 다들 생각해서 건네는 말들이 하나같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혼자서 두 아이 육아와 살림을 하다 보니 산후우울증이 심해졌고 디스크까지 터져서 움직이기가 어려워져서 모든 게 버겁게만 느껴졌다.

 

'정말 내가 시간이 많아서 우울증에 걸린 걸까? 정신력이 약해서일까? 참을성이 그리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몸이 아프면 집에서 푹 쉬거나.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으면 증상이 완화되는데. 마음의 병은 눈에도 보이지 않고, 정신과 병원을 가기도 쉽지 않고, 증세가 완화되고 있는지 악화되고 있는지 병의 경과를 알 수 없어서 마음이 답답했다.

 

생명의 전화 상담사분께서 우리 지역에 있는 정신건강센터에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다음 날 정신건강센터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고 며칠 후에 방문했다. 상담사분과 상담을 하기 전. 우울감과 자살충동에 관한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했다. 작성한 자료를 바탕으로 상담이 진행되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우울감과 불안감 지수가 높은 편이니 정신과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받아볼 것을 적극 권하셨다. 상담 선생님은 동네에 있는 정신과 병원 목록을 건네주셨다. 3회기 정도의 무료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병원들도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상담 스타일이 나와 잘 맞는지도 중요했기에 무료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병원들 중 한 곳에 전화를 걸었다. 고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으로 정신과가는 것이기에 전화를 걸기 전 무척이나 긴장되고 떨렸다.


" OOOO정신과입니다."


전화를 받으신 여자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없는 평일 오전으로 진료예약을 잡았다. 병원은 집에서 걸어서 약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병원 진료일이 다가올수록 '내가 병원에 갈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한 걸까?', '그래도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야 하지 않을까? '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뒤바뀌었다.


드디어 병원을 가는 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서둘러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대형마트를 오가며 지나가던 길목에 병원이 위치해 있었다. 병원은 주상복합형 아파트 2층에 있어서 여러 가게들이 건물에 함께 있어서 다행이었다. 병원에 들어섰다. 예상과는 달리 여느 병원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쾌적했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접수를 한 뒤에 앉아서 기다렸다. 잠시 후에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새하얀 머리에 안경을 쓰고 계신 중년의 의사 선생님이 나를 맞이해 주셨다. 환자가 앉는 쪽에 휴지가 놓여있었다. 의아했다. 하지만 상담을 시작한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처음 보는 낯선 의사 선생님께 속마음을 털어놓자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OOO 씨는 우울과 불안 정도가 현재 높은 상황이에요. 우울증 맞고요. 약물까지도 복용해야 할 수준입니다."


'요즘 들어 우울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약물까지 복용해야 할 수준이라니...' 혼란스러웠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약물을 먹는 건 좀 더 고민을 해보면 안 될까요?..."


혹시나 '약을 먹었다가 약물 의존도가 높아져서 끊기가 어렵지 않을까?' 두려움이 몰려왔다. 고등학교 때 처방받은 정신과 약을 먹고는 마치 신생아처럼 잠만 자고 기분이 몽롱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약물을 복용하는 건 조금 생각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선은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서 우울증을 치료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내 의견을 존중해주셨고 우선 상담 위주로 치료해보자고 말씀하셨다. 진료실을 나선 후 몇 가지 간단한 심리검사를 했다. 우울, 불안, 강박, 자살충동에 관해 체크하는 설문지였다.

(전혀 그렇지 않다- 조금 그런 편이다- 보통이다- 약간 그렇다- 매우 그렇다 이렇게 5가지 항목 중에 해당하는 정도에 체크를 하면 되었다.) 설문지를 다 작성하고 병원문을 나섰다. 그렇게 나는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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