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까까 할아버지는 어딨어?''
어느 날, 아들이 뜬금없이 물었다.
친정엄마가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하시다 보니 아이들은 외할머니를 까까 할머니라고 부른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를 까까 할아버지라고 말한 것 같았다.
''어?"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음... 까까 할아버지는 멀리 가셨어. 그래서 엄마도 사실 어디에 계신 지 잘 몰라.''
아이는 내 대답이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더 이상 묻진 않았다.
친정집에서는 아버지 얘기를 꺼내는 게 금기시되다 보니 아이에게 그동안 아무도 외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해준 적이 없어서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아이의 말에 그동안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혹시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상황을 설명한 후에 아버지가 현재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초본을 떼어보면 아버지의 현 거주지가 나와있다고 안내를 받았다. 전화를 끊고 바로 동사무소에 방문해서 초본을 떼어보았다. 집에서 차로 약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였다.
주말에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함께 초본에 적혀있는 주소지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어린 둘째 아이가 카시트가 많이 답답했었는지 칭얼거렸다. 남편과 아이들은 차에 머물러야 했다. 나 혼자서 그 집을 찾아 나섰다. 초행길이었고 이미 거리에 어둠이 내려앉아서 지도 앱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무지 어디가 어디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길을 계속 헤매다가 가까스로 그 집이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어두운 골목길이었고 낯선 남자분이 길 초입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가로등이 켜져 있어도 너무나 깜깜하기에 무서워서 집으로 그냥 돌아갈까 망설여졌다. 몇 분 동안 걷다가 겨우 그 집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벨을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그 집에 흰색과 빨간색이 섞여 있는 깃발이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집은 바로 점집이었다. 아버지를 찾는 걸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고 돌아갈 수가 없었다. 깊게 심호흡을 한 번하고 용기 내어 벨을 눌렀다. 집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났다. 곧 누군가가 "누구세요?"하고 물었다. 문이 철컥 열렸다.
"안녕하세요. 혹시 OOO 씨라고 아시나요? 저는 그분의 딸인데요. 동사무소에 알아보니 아버지가 현재 이 주소에 살고 계신다고 하셔서 한번 와봤어요."
"아... 그분이요? 제가 여기 이사 오기 전부터 이 집에 전입신고가 되어있었어요. 그런데 그분은 여기 살지 않아요."
"아... 네."
혹시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찾아갔는데 여기에 살고 계시지 않으시다니.
'그럼 도대체 어디에 살고 계시는 걸까? 그런데 왜 이곳에 전입신고가 되어있는 것일까? 이 분이 이사를 오기 전부터 아버지가 이 집에 전입신고가 되어있다고 하셨는데 이 분은 왜 퇴거 신청을 안 하셨을까? 혹시나 아버지의 부탁으로 뭔가를 숨기고 계시는 건 아닐까? ' 여러 의문들이 머릿속에서 마구마구 뒤엉켰다. 혼란스러웠다. 혹시나 이분이 아버지에 대해 뭔가를 알고 계시지 않을까 해서 메모지에 내 연락처를 적어서 건넸다. 하지만 차로 돌아오다가 다시 그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분이 아버지에 대해 모르실 수도 있는데 연락처를 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연락처를 돌려받았다. '이제는 아버지를 어디에서 찾는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차에 있던 아이들과 남편이 날 보자 물었다.
"장인어른 찾았어?"
"아니... 여기 안 사시더라고..."
남편도 더 이상 묻지를 않았다. 아마도 나를 배려해서였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속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신 걸까? 엄마와 이혼한 지 10년이나 지났는데도 자식들을 찾지 않으신 걸 보면 영영 우리를 안 보고 싶으신 걸까? 아버지는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으셨던 걸까?' 모든 게 의문투성이었다. 아버지가 세상 속으로 사라지셨다. 꽁꽁 숨어버리셨다.
'그렇다면 내가 찾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은 내게 아버지가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면 반드시 집으로 찾아오실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만나게 되는 건 너무나 싫었다. 아픈 몸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그제야 집으로 돌아오시는 거니까.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셨을 때는 워낙 갚아야 할 빚도 많았고, 모든 고난과 시련이 한꺼번에 휘몰아쳐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보니 아버지를 한 번쯤은 찾아뵙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아버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신 걸까? 자식조차도 찾아오지 못할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