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지구별소녀 Oct 12. 2021

누군가가 생각이 나서

친정엄마의 허리 통증이 요즘 심상치가 않다. 진통제를 드셔도 스테로이드 주사를 허리에 맞아도 허리와 다리 통증이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늘 허리에는 복대를 착용하고 계셨다. 운동을 통해 허리 근육을 꾸준히 키우는 방법이 통증 완화에 제일 좋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장사를 하고 계셔서 운동할 시간을 따로 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퇴근하실 때조차도 마을버스로 한 정거장 정도의 짧은 거리를 이제는 버스를 타고 다니신다. '워낙 인내심이 강한 편이신데 오죽이나 다리가 아프시면 버스를 타고 다니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편치 않아서 얼마 전부터 아침에 엄마 가게의 문을 여는 걸 도와드리기 시작했다. 엄마 혼자서 가게문을 여시면 족히 1시간은 걸리지만 내가 곁에서 도우니 약 30분 정도면 가게문을 어느 정도 열 수 있었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은행에서 잔돈도 미리 바꿔다 놓고 통장정리와 같은 간단한 은행 업무를 봐드리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가게 문을 열다 보니 매일 아침 우리 가게에 오시는 단골손님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팔과 다리에 중풍을 맞으셔서 몸이 조금 불편해 보이는 아저씨는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가게에 오셔서 캔커피를 드셨다. 엄마가 가게 문을 여느라 가게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하시는 동안 다른 손님이 오시면 엄마에게 손님이 오셨다고 알려주시기도 하고 가게도 잠시 봐주시는 고마운 분이셨다. 오른쪽 팔과 손이 불편해 보이셔서 종이컵 하나를 꺼내어 캔커피를 종이컵에 따라 드렸다.


"아저씨, 커피 맛있게 드세요."


커피를 건네드리며 대화를 몇 마디 나누게 되었다. 아저씨도 내 나이 또래의 따님이 한 분 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저씨의 따님도 나처럼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고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살고 있다고 하셨다. 따님이 먼 타국에서 살고 계셔서인지 나를 보면 따님이 그렇게 생각이 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엄마와 나에게도 커피 한 잔씩 사주고 싶다고 하셨다. 아무리 괜찮다며 사양을 해도 딸 같아서 사주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죄송스러웠지만 계속해서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결국 커피를 얻어먹었다. 아침부터 따뜻한 마음 한 잔을 건네받은 것 같아 가슴이 따뜻해졌다.


지난 추석의 일이다. 엄마는 명절이라 과일 선물세트를 많이 사 오셨다. 중년으로 보이는 한 남성분이 엄마 가게로 오셨다.


"아주머니, 배 선물세트 두 상자 주세요. 아주머니를 보면 저희 엄마가 생각나서 제가 다른 데 안 가고 또 왔어요."


그분은 지난 설에도 엄마 가게에 오셔서 과일을 사 가셨다고 했다. 가게 근처에 있는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님께 가져다 드릴 선물이라고 하셨다. 어머님뿐만이 아니라 요양원에 계시는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요양원 직원분들도 함께 나눠 드실 수 있도록 넉넉히 사가신다고 하셨다. 한 시간 정도  흐른 후 그분이 다시 가게에 찾아오셨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을 찾아뵙고 집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 가게에 인사를 하러 다시 오신 것이었다.


"아주머니, 저 이제 가보려고요. 내년 설에도 또 과일 사러 올 테니까 아주머님도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네, 아저씨도 조심히 가세요. 명절 잘 보내시고요."

따뜻한 말들이 오갔다.


명절이 지난 후에 엄마가 고마우신 분이 계셨다며 그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분의 어머님도 젊은 시절. 우리 엄마처럼 야채, 과일 장사를 하셨던 걸까? 아니면 우리 엄마랑 닮으신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마다 엄마 가게에서 과일을 사 가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테 집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인사까지 하러 오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그분의 어머님이 배를 맛있게 드셨기를. 요양원에서 부디 잘 지내시기를. 앞으로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살다 보면 가끔씩 누군가를 보며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대학시절. 어떤 브랜드의 남자 향수 냄새가 물씬 풍겨올 때면 첫사랑의 그가 아련하고 애틋하게 떠올랐다.

첫 조카가 태어났을 때에는 길을 걷다가 아기들을 마주치거나 아기 옷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칠 때면 조카가 생각났다. 그래서 조카에게 어울릴만한 예쁘고 귀여운 아기 옷을 사서 선물을 했다.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는 길을 가다가 종종 사람들에게 내 시선을 빼앗기는 경우가 있었다. 아장아장 걷고 있는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할아버지. 나란히 서서 다정하게 얘기하며 걸어가는 아빠와 딸. 서로에게 의지한 채 천천히 걸어가는 노부부를 마주칠 때면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 동안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지금 계셨더라면 아마도 우리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과자를 사주시려고 슈퍼에 가셨겠지. 가끔은 나와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 가서 같이 산책했겠지.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두 분이서 같이 늙어가셨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버지는 지금 우리 가족 곁에 계시지 않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모습이 더 애틋하고 아름다워 보여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만 보았다.


누군가가 생각난다는 건 아마도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애틋한 사랑. 한없이 베풀고 싶은 사랑. 그리운 사랑. 보고 싶은 사랑. 잊고 싶은 사랑. 사랑의 모양과 크기는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가 생각나서 기쁜 날들도 있지만 때로는 누군가가 생각나서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면서 그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들도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 누군가가 생각나는 날에는 마음이 몽글몽글 뭉클해진다. 소중한 누군가가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있기에 우리는 가슴속에 뜨거운 사랑을 품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전 07화 파란 선풍기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내 사랑 순이 2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