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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소녀 Oct 08. 2021

파란 선풍기

엄마의 손수레에 실린 상자들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만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길거리에 상자들이 수북이 쌓이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깃 쳐다봤다. 창피했고 짜증이 났다. 


"엄마, 왜 길거리에 버려진 상자까지 줍고 그래!"

힘든 가게 일도 모자라 엄마는 아침 출근길에 길에 버려진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이게 중심을 잃어서 그래. 엄마가 다시 잘 쌓으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 폐지값이 최고로 떨어졌을 때는 킬로당 30원밖에 안 했는데 지금은 100원이나 됐어"

엄마는 쓰러진 상자들을 주워 담으시며 수레에 차곡차곡 쌓으셨다. 키로에 100원이면 10kg을 주워도 1000원 남짓한 돈인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예전에는 가게에서 라면이나 과자, 아이스크림 등을 진열하고 나온 상자들만 가게 옆에 있는 창고에 모아서 쌓아두셨다. 상자 외에도 맥주나 통조림 캔, 고철 등도 열심히 모으셨다. 창고 가득 상자가 모이면 동네 고물상에 전화를 거셨다. 그러면 고물상에서 일하시는 분이 트럭을 몰고 와서 박스와 재활용품 등을 실어가셨다. 


예전에는 엄마가 고물상에 직접 가셔서 상자값을 받아오셨지만 요즘은 하지방사통*이 워낙 심하셔서 다리가 당기고 저려서 잘 못 걸으신다. 그래서 내가 대신 고물상에 가서 상자값을 받아온다. 한 달가량 열심히 모아야 벌 수 있는 돈이 기껏해야 1,2만 원인 데도 엄마는 보너스를 탄 것처럼 기뻐하셨다.

(*하지방사통- 돌출된 허리 디스크가 신경을 눌러서 허벅지나 종아리 부분이 당기고 다리가 저린 증상.)


엄마 가게 앞에 농협 하나로 마트도 있고 편의점들도 주변에 우후죽순 생겨나 요즘에는 손님들이 거의 없는 편이다. 담배조차 팔지 않는 엄마의 구멍가게는 이제는 월세조차 내기 버거울 지경이다. 게다가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주변 음식점들이 문을 일찍 닫게 되면서 인적이 드문 깜깜한 밤거리에 엄마의 가게가 혼자서 덩그러니 불을 아무리 환하게 켜 놓아도 찾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한 달에 70만 원인 월세조차도 두 번에 나눠서 내고 계신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한 자리에서 16년 동안 장사를 하고 계시고 가게 주인분이 인심이 좋으셔서 이해를 해주신다고 해도 죄송할 따름이었다. 이쯤 되면 가게를 접으시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엄마는 미련하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년 365일. 아침 10시면 가게문을 열고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가게문을 닫으신다. 67세의 나이에 하루에 무려 15시간씩 일하는 게 고될 법도 한데. 사장님이자 동시에 유일한 가게 종업원인 엄마. 가게 월세와 전기세, 공과금을 내고 나면 엄마의 인건비가 나오기는 하는 건지. 썩거나 상해서 음식쓰레기로 버려지는 야채. 과일을 볼 때면 엄마가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엄마는 정확히 계산을 해 보진 않았지만 가게에서 장사를 해서 뭐가 남으니까 월세도 내고, 전기세, 공과금도 내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엄마가 장사를 하면 할수록 엄마의 빚도 점점 더 쌓여만 갔다. 점점 더 커지는 엄마의 약상자를 보니 장사를 해서 버는 돈보다 엄마의 약값과 병원비로 나가는 돈이 아마도 더 클 것 같다.


가게 매출이 계속해서 나빠지자 엄마는 나름대로 부수입을 창출할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셨다. 손품을 팔아 쪽파나 고구마순 등을 다듬어 파시고 아침에 가게로 오는 길목에 마주치는 상자를 줍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퇴근할 때 무거운 발걸음에도 한 손에는 손수레를 꼭 쥐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다음날 출근길에 수레를 챙겨서 길거리에 보이는 상자들을 줍고 또 주웠다. 기껏해야 10분 남짓한 거리에서 상자를 주워봐야 얼마나 줍겠냐만은 엄마는 개미같이 성실히 매일같이 수레에 상자들을 주워 담고 또 담았다. 다달이 나가는 대출이자, 밀린 월세, 공과금, 과일 야채 외상값을 내는데 보태기 위해서 상자를 주우시겠지만 자식으로서 내 마음은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손수레에 이번에는 파란 선풍기를 싣고서 우리 집에 오셨다. 예전에 친정집에서 보았던 선풍기였다. 회전 기능이 고장 나서 늘 고정해서 써야만 하는 불편한 선풍기였다.


"엄마, 이 선풍기 왜 가져왔어? 엄마 쓰는 거 아니야?"

"아, 너네 집에 선풍기가 거실에 한 대밖에 없는 것 같아서 안방에서 이거 틀고 자라고 가져왔어. 서비스센터에 가서 고쳐서 이제 회전도 돼." 엄마는 웃으셨다.

"수리비 많이 들지 않았어?"

"4만 원 들었어. 이번에 모터도 새로 갈고 회전도 되게 하고 아래에 없어진 부품도 다른 색깔의 부품으로 싸악 교체했어. 완전 새 거 됐어. 한 번 틀어봐. 신일 제품이라 엄~청 시원해."

"엄마가 돈이 어디 있어서. 미안하게 이걸 고쳐왔어. 서비스 센터도 멀었을 텐데... 말을 하지..."

"아니야. 엄마 폐지 팔아서 돈 벌었어. 암말 말고 잘 써. 우리 딸!"

"..."


그랬다. 알고 보니 폐지를 팔고 고물상에서 받은 돈에다가 조금 더 돈을 보태서 선풍기를 고쳐오신 것이다. 큰 아이가 아토피가 심해서 몸속에 열이 많아 밤새 몸이 가렵고 더워서 잠을 잘 못 잔다고 말씀드린 게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폐지를 줍지 말라고 뜯어말렸었는데. 그 돈으로 이렇게 선풍기를 선물 받으니 너무나 죄송했다.


우리 동네에는 폐지를 주워서 딸네 집에 있는 가스레인지를 인덕션으로 바꿔주신 할머님도. 할머니와 함께 밤마다 유모차에 폐지를 줍고 다니시는 할아버님도. 또 자식 집 사는데 보태주고 싶으시다며 우리 아파트 한켠에 상자를 차곡차곡 쌓고 계시는 할머님도 계신다. 모두들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유모차나 수레에 몸을 기대어 걷고 또 걸으시며 폐지를 주우신다. 이거 팔아서 자식들한테 하나라도 보태줘야지. 손주들 과자라도 사줘야지. 자식들에게 부담 안되게 생활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태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폐지를 줍고 계시는 건 아닐까.  나도 두 아이의 엄마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리기에는 아직도 너무 어린것만 같다. 그 마음의 깊이를 언젠가 다 헤아릴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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