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네가 내게 건네준 건 네 마음이었어.
엄마는 내가 25살 때 아버지의 빚을 다 떠안는 조건으로 이혼을 하셨다. 그때 당시 부모님이 이혼을 하신 것도 너무나 가슴이 아팠지만 하루하루 갚아나가야 할 빚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당시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지만 엄마가 빚을 갚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200만 원이 급히 필요한 일이 있었다. 친구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비를 가불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보험약관대출을 알아보았다. 상담원과 통화를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대출이자율이 높았다. 또 다른 보험회사에 문의해보았다. 역시나 여기도 이자율이 높았다. 낙담을 하고 전화를 끊었을 때. 친구는 어느새 내 곁에 서 있었다. 친구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정림아, 보험회사에 전화하지 마. 내가 그 돈 빌려줄게. 그런데 부탁이 한 가지 있어. 돈은 나중에 상황이 안되면 안 갚아도 되는데 내 전화는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돈은 잃어도 친구를 잃기는 싫거든.''
놀라고 창피해서 심장이 두근두근 요동쳤다. 상황은 어려웠지만 친구가 빌려준다는 돈을 선뜻 받아도 될지 망설여졌다. 하지만 친구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다고 사양을 했다. 하지만 친구는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사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결국 친구는 내게 그 큰돈을 선뜻 빌려주었다.
그때 당시 우리 집은 불어난 빚더미에 추운 겨울에도 난방조차 틀 형편이 못 될 정도로 어려웠다.
'친구는 나를 뭘 믿고 돈을 먼저 빌려준다고 했을까?'
나는 그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에 당장 그 큰돈을 갚을 수 없었다. 적어도 3,4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비를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겨우 갚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비를 아끼고 모아서 석 달만에 200만 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돈을 갚던 날. 이자도 없이 큰돈을 선뜻 빌려준 친구에게 뭔가 작은 선물이라도 꼭 해주고 싶었다. 무슨 선물이 좋을까 고민을 해보았다. 예전에 친구와 함께 갔던 커피숍에서 친구가 까망베르 치즈케이크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와 만나기 전. 그 커피숍에 들러 까망베르 치즈케이크를 홀케이크로 구입했다. 친구가 이 선물을 받으면 좋아할 것 같은 생각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친구와 만나 빌린 돈과 케이크를 건넸다. 하지만 친구는 케이크는 괜찮다며 계속 사양을 했다.
''친구야, 그때 네 덕분에 우리 가족이 정말 힘든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내가 돈을 최대한 빨리 갚고 싶었는데 몇 달이 지나서야 갚아서 너무 미안해. 그리고 이 케이크는 네가 베푼 호의에 비하면 너무 약소하지만 집에 가져가서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맛있게 먹어. 정말 고마웠어. 친구야.''
고등학교 1학년 때 17번. 18번으로 만나 첫 짝꿍이었던 친구와 나.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다 보니 결혼 후에는 그 친구와 만날 짬을 내기가 참 어려웠다. 하지만 친구는 내 결혼식에도.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도. 큰아이 돌잔치 때에도. 둘째가 태어났을 때에도. 부천에서 창동까지 왕복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나를. 우리 아이들을 만나러 와주었다. 요즘에는 코로나로 인해 2년 넘게 얼굴을 못 본 우리. 이 글을 쓰다 보니 그 친구가 너무 보고 싶고, 친구와 매일같이 만났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다.
''친구야, 그 당시 네가 내게 건네준 건 돈이 아니라 네 따뜻한 마음이었어. 네 마음 덕분에 내가 힘든 시기를 꿋꿋하게 잘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웠어. 친구야. 너도 내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그리고 우리 죽을 때까지 지금처럼 평생 단짝 친구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