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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소녀 Dec 20. 2021

누군가 날 위해 요리한다는 건

내 마음도 따뜻하게 데워줬던 볶음밥

지난 주말 아침에 볶음밥을 만들었다. 갓 만들어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볶음밥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입안 가득 군침이 돌았다. 볶음밥을 한 숟가락 가득 떠서 한 입 먹었.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옛 추억 한 조각이 두둥실 떠올랐다.


대학교 1학년 때 내 생일날이었다. 오전에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만나기 위해 종로로 향했다. 친구에게 생일선물도 받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고 차를 마시러 어디로 갈까?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대학교 같은 동아리의 여자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림아, 지금 학교야?"

"아니요."

"어. 그럼 학교로 올 수 있어?"

"네? 저 오전에 수업 다 듣고 지금 친구랑 종로에 있는데요..."


선배는 내게 지금 꼭 줄게 있다며 학교로 빨리 와줬으면 했다. 끝내 선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결국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친구와 함께 학교로 갔다. 친구는 고맙게도 잠시 동안 캠퍼스 구경을 하고 있을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선배를 잘 만나고 오라고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선배가 이미 와 있었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선배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도시락이었다. 도시락통을 열어보니 알록달록한 색깔의 볶음밥이 담겨있었다. 선배는 내 생일이라 따끈따끈한 볶음밥을 만들어주기 위해 오전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볶음밥을 만들어서 가져왔다고 했다. 이미 친구와 점심을 먹은 후라 배가 많이 부른 상태였지만 선배의 정성을 생각하니 도시락을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볶은밥은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었고 맛있었다. 밥을 먹는 동안 선배에게 조금 미안했다. 이미 친구를 만나고 있어서 학교로 다시 돌아가기가 사실 조금 귀찮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만약 학교에 다시 가지 않았더라면, 선배가 직접 만들어준 따뜻한 도시락을 맛볼 수도 없었고, 선배의 고마운 마음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선배는 그날 이후로도 동아리 후배들의 생일이 다가올 때면 털실로 직접 만든 목도리를 선물하거나 손편지를 적어서 선물로 줬다. 그 선배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뭔가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세월이 흘러서 그 선배와 연락은 끊겼지만 혹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 얘기는 꼭 해주고 싶다.


''선배, 저 그때 진짜 감동받았어요. 살면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요리를 해준건 엄마 빼고 선배가 처음이었어요. 정말 고맙고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줘서 감사해요. 선배는 정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에요. 따뜻한 손난로 같은...''


내가 만든 볶음밥을 먹으면서 그동안 내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 받았던 선물들을 한 번 떠올려보았다. 값비싼 선물이 제일 먼저 떠오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동안 바쁘게 살면서 잊고 지냈던 선물들. 내 머릿속의 선물 파일에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 장기간 보관되어있던 선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먼지를 후후 불면서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선물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소중한 사람과 옛 추억이 떠오르며 다시 그들이 보고 싶었고 과거의 소중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들을 천천히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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