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둘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새 학기를 앞두고 아이와 부모 중 한 명이 신속항원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하는 문자였다. 나조차도 신속항원검사를 아직 한 번도 안 해봤고 6살 난 아이에게 내가 검사를 잘할 자신이 없었기에 아이와 함께 가까운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서류를 작성하고 아이와 함께 줄을 서자 간호사분께서 신속항원키트 2개를 나눠주셨다. 빈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셀프 검사를 하는 방식이었다. 평소에도 비염이 심한 나는 면봉을 코 속에 깊숙이 집어넣자 연신 재채기가 흘러나왔다. 아이의 검사를 주저하면서 잘 못하자 간호사 선생님이 아이의 검사를 도와주셨다. 신속항원검사는 15분에서 30분 정도면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이 안되자 아이가 음성이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날 밤까지도 내 검사 결과 문자는 오질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검사 결과를 물어보기 위해 다시 선별 진료소를 방문했지만 이미 오후 한 시가 지나서인지 선별 진료소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사 가지고 왔다. 집에 오자마자 손을 깨끗이 씻고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30분 정도 지나서 키트를 봤더니 C부분에만 한 줄이 있었다. 음성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며칠 후.
남편의 컨디션이 심상치 않았다. 주말에 산에 다녀와서 생긴 근육통으로 몸살기가 있는 줄로만 알았다. 남편의 얼굴 안색이 안 좋았고 피로감이 극심해 보였다. 느낌이 안 좋았다. 그래서 집에 있는 키트로 검사를 해보았다. 검사를 하자마자
T부터 선명하게 한 줄이 나타나더니 곧이어 C에도 한 줄이 나타났다. 남편도 나도 오로지 집 회사 집 회사만 왔다 갔다 했는데 어디에서 코로나가 걸린 건지. 남편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PCR 검사를 받기 위해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9시가 넘어서 문자가 도착했다. 우리의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 확진 문자였다. 남편도 나도 너무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12월 27일에 남편과 나는 서둘러 코로나 3차 예방접종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돌파 감염이라니... 어안이 벙벙하고 황당했다. 문자로 결과가 오길래 결과가 당연히 음성일 줄 알았는데 양성 문자였다. (요즘은 바뀌었는지 확진자여도 전화로 알려주지 않고 문자로 알려주었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PCR 검사를 받으러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이미 보건소 근처에 있는 길가까지도 PCR 검사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져있었다.
아이들과 힘겹게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검사 대기줄이 길어서였는지 바람이 차서였는지 침을 넘길 때마다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이들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화장실이 하나. 방이 하나인 우리 집에서 남편과 격리생활을 해야 한다니 현실적으로 격리가 불가능해 보였다. 우선 남편은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안방에서 혼자 생활을 했다.
온 가족이 마스크를 끼고 밥도 시간대를 달리해서 혼자서 따로따로 먹었다. 하지만 내 몸상태가 점점 안 좋아졌다. 마음 같아서는 푹 쉬고 싶었지만 갑자기 회사에 출근을 못 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번 주에 해야 할 업무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게다가 9살. 6살인 아이 둘에. 식사 준비에 기본적인 살림에 마음이 심란하고 무거운 상황 속에서도 몸은 바쁘게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마음도 몸도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갔다. 밤새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오한이 들고 밤새 열이 39도 가까이 올랐다. 아무래도 목이 많이 부어서 고열이 나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기다리고 기다리던 PCR 검사 결과 문자가 왔다. 다행히 아이들은 둘 다 음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확진 문자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부부가 둘 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