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국물을 맨손으로 만지는 이모님
문득 그분의 삶이 궁금해졌다
어느 날 오전에 외근을 나갔다. 회사에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럴 땐 회사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백반집이 최고다.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고 값도 싸고 무엇보다 음식이 아주 빨리 나오기 때문이다. 함께 외근을 나간 회사 동료와 백반집으로 향했다. 이 백반집의 이름은 맛나 식당이다. 사실 밖에서 보면 식당인지 아닌지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요즘 배달 음식을 만드는 가게들처럼 가게의 유리가 온통 검은 시트지로 가려져있기 때문이다. 식당의 문은 거의 늘 닫혀있어서 이 가게가 식당이라고 얘기를 듣기 전까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식당의 문을 열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한 평 남짓한 좁은 가게에 손님들이 가득해서 늘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가게 안에는 사장님과 곁에서 일을 돕는 이모님의 손길이 늘 분주하다. 사장님은 백반의 온갖 메뉴를 머릿속에 다 꿰고 계시는지 메뉴가 다채로워서 먹는 재미가 솔솔 하다. 어떤 날에는 김치 콩나물국과 매콤한 오징어볶음. 어떤 날에는 바삭바삭 잘 튀겨진 가자미구이와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가 먹기 전부터 입맛을 한껏 돋운다.
가게 안은 손님들로 꽉 차있는 경우가 많아 보통 홀에서 먹지 못하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커다랗고 찌그러진 스텐 쟁반에 반찬을 먹을 만큼만 담고 공깃밥과 뜨거운 국을 받아 회사 사무실로 가져와 먹는다. 일하시는 이모님은 정이 많으셔서 늘 공깃밥을 뚜껑이 잘 안 닫힐 정도로 담아주시고 국도 국그릇이 넘칠 정도로 가득 담아주신다.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콩나물 김칫국이 국으로 나왔다. 일하는 이모님이 내게 김칫국을 건네는 순간.
''앗! 뜨거워!''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뜨거운 국물에 손가락이 데었는지 왼쪽 엄지손가락이 화끈거리고 아려왔다. 일하는 이모님은 내게 괜찮냐고 물으시며 반찬을 건네셨다. 그 순간. 이모님의 손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모님은 손을 매우 심하게 떨고 계셨다. 단순한 수전증이 아니었다.
'저렇게 손을 심하게 떨고 계신데 이 일이 너무 고되고 힘들지는 않으실까?' 난 단 한 번만 닿아도 비명소리가 날 정도로 이렇게 뜨거운데 일하는 이모님은 아무렇지 않게 계속해서 뜨거운 국물을 여러 테이블에 나르신다.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식당을 나설 무렵 사장님과 이모님께 말을 건넸다.
''사장님, 이모님, 많이 파세요.''
''언니들 고마워. 잘 가.''
''아니에요. 저희가 맛있는 밥을 주시니 오히려 감사하죠.''
따뜻한 인사말들이 오갔다.
밥과 반찬과 국이 가득 담긴 쟁반을 들고서 회사로 돌아왔다. 창 밖에 내리쬐고 있는 햇볕 아래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연신 바삐 움직이며 동료와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자 아까 데인 손가락이 화끈거렸다.
'그 이모님은 손에 굳은살이 많이 배겨서 뜨거운 걸 잘 못 느끼시는 걸까? 아니면 뜨거운데도 일을 해야만 하기에 매일같이 뜨거운 국을 참고 만지시는 것일까? 이모님이 우리 엄마와 비슷한 연배로 보여 더욱 마음이 가고 생각이 났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을수록 우연히 어르신들을 뵈면 많은 생각이 든다. '저분은 젊었을 때 어떻게 생기셨을까?
저분의 젊은 시절은 어떠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머리 위에서 모락모락 피어난다. 낮에 식당에서 만난 이모님이 퇴근 후에는 힘든 일은 조금 내려놓으시고 저녁시간만이라도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며칠 전. 그 식당에 밥을 받으러 갔다. 그때 뵈었던 그 이모님이 아닌 다른 이모님이 일하고 계셨다. 훨씬 젊어 보이고 손도 떨지 않는 이모님이었다.
'그전에 일하셨던 이모님은 어떻게 되신 걸까?'
이름도 모를 정도로 스쳐간 이모님이었지만 잘 지내고 계신지 이모님의 안부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