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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이은 Mar 11. 2022

기업문화 내재화의 핵심 사회화

#내재화 #사회화 #지식경영 #기업문화

천년 제국 로마에는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테베레 강가 동쪽에 위치한 일곱 언덕 중 하나인 팔라티노 언덕에서 건국한 이야기, 당대 최고의 명장 한니발을 물리친 스키피오, 스키피오를 키워낸 로마인 특유의 시민성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로마를 대제국으로 키워낸 갈리아 원정과 제국 운영의 기본철학이 된 개방성과 포용성, 로마 제국의 전성기 오현제(五賢帝) 시대, 그리고 리더 계층의 부패와 향락 등 비밀스러운 독소가 제국에 주입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스토리 등은 언제 읽어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출처. 위키피디아]

최근 가치경영체계 재정립 프로젝트를 하면서 로마의 오현제 시대를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물리친 이후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받으며 로마는 사실상 공화정이 무너지고 전제정이 시작된다. 아우구스투스 사후 네로 같은 폭군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네르바, 트리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는 뛰어난 황제가 로마를 이끌며, 약 200년 간의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만들게 된다.


팍스 로마나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이 중 개인적으로 가장 동의하는 것은 혈연이나 지연, 사적 이해관계로 후계자를 선정한 것이 아니라 역량과 품성을 갖춘 후계자를 양자로 맞이하여 황제 자리를 잇게 한 제도 때문이라는 의견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해보자면 투명하고 공정한 승계 계획(Succession Plan), 안정적 거버넌스(Governance)가 확보된 것이다. 그런데 오현제 시대 동안 지켜진 전통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도 가장 존경받는 황제이자 철학자인 아우렐리우스에 의해 끝이 난다. 그는 수많은 업적 속에서도 자신의 아들인 코모두스를 후계자로 지목한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로마제국을 쇠락의 길로 걷게 한다.


지금은 <명상록>이라고 불리는 '자기 자신에게(ta eis heauton)'라는 일기를 통해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 수양, 셀프 리더십(Self-leadership)을 발휘했던 아우렐리우스는 왜 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까? 당시 게르만족과의 전쟁, 집권 세력 내 갈등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기업문화 관점에서 보자면 <노나카의 지식경영>에 나오는 '지식 전환 모델'에서 '사회화(Socialization)'가 실패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노나카(Ikujiro Nonaka)는 지식을 그 형태에 따라 말이나 글자를 통해 전달하기 어려운 '암묵지(Tacit knowledge)'와 언어적 형태를 통해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형식지(Explicit knowledge)'로 구분했다. 그리고 핵심 암묵지가 형식지로 전환되는 것을 외부화(Externalization), 형식지가 보다 구체적인 형태의 형식지로 바뀌는 것을 종합화(Combination), 구체화된 형식지가 개인이나 팀의 상황에 맞게 변환되어 새로운 암묵지로 정착되는 것을 내재화(Internalization), 개인의 암묵지가 조직의 암묵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사회화(Socialization)라고 설명했다. 이 네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때 조직은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나카가 말한 지식 전환 과정은 기업문화가 형성되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창업자(또는 창업 그룹)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생각과 철학들을 구체화해 기업의 경영이념이나 비전 형태로 제시하는 외부화, 경영이념 등을 보다 구체적인 행동 규범이나 우수 사례(Best practice)를 통해 보여주는 종합화, 행동규범을 업무나 관계 속에 적용하고 실천함으로써 자기 것으로 만드는 내재화, 그리고 내재화 과정을 통해 얻게 된 자신만의 지혜를 주변에 전파하는 사회화가 진행됨으로써 특정 철학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외부화-종합화-내재화-사회화'가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네 가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견고한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외부화와 종합화를 한 후 내재화는 개인의 몫으로, 사회화는 개별 팀의 몫으로 던져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 '문화가 예전 같지 않아'라는 말과 함께 또다시 외부화와 종합화를 한다. 경험적으로 보면 기업문화 혁신 실패는 외부화와 종합화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재화와 사회화가 진행되지 않아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아우렐리우스로 돌아가 보면, 스스로 로고스(Logos. 섭리, 진리, 이성)에 따르는 삶을  살았지만 자신 주변 사람, 특히 본인이 후계자로 지목한 아들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원칙과 철학을 스스로 철저히 지키면 주변 사람들은 알아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의 후계자의 모습을 보면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못하는 듯하다. 


기업문화를 관리할 때, 의례 내재화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내재화가 아우렐리우스의 사례처럼 돼서는 안 된다. 진정한 내재화는 스스로 실천하는 것과 함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실천적 지혜들이 교류되고, 개인들 간 또는 팀들 간 미세조정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사회화까지 포함해서 해야 한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에서 "체력에서는 켈트족이나 게르만 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 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 인보다 못했던 로마인들이 특유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대제국을 들었다"라고 적었다. 여기서 말하는 개방성과 포용성은 로마만의 사회화 원칙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업문화 혁신이나 내재화를 고민하고 있다면 사회화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것도 힌트가 될 수 있다. 



[참고도서]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신형덕. <잘 되는 기업은 무엇이 다를까>

Ikujiro Nonaka. <The Knowledge Creating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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