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 산업의 미래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 그리고 그 사이 우리는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은 영국 출신 컴퓨터 과학자로, 흔히 ‘인공지능의 아버지’라 불리는 분입니다. 2024년에는 인공신경망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까지 수상한, 그야말로 탑티어 과학자입니다.
힌튼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이른바 ‘AI 겨울’을 끝내고 부흥기를 연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핵심적 업적은 ‘역전파 알고리듬(Backpropagation Algorithm)’의 확산입니다. 이 알고리듬은 인공신경망이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오류를 수정하며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방법론으로, 오늘날 모든 딥러닝 모델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힌튼은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경고한 내부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오랫동안 구글의 인공지능 연구를 주도했으나, 2023년 돌연 퇴사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그의 인터뷰 영상에서 사회자가 “인공지능은 어떻게 작동하나요?”라고 묻자, 힌튼의 대답은 뜻밖에도 “모른다.”였습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인공지능이 작동할 수 있는 알고리듬을 제공했을 뿐, 그것이 어떻게 운영되어 지금과 같은 결과물을 내는지는 정확히 모른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창발적 능력(emergent capability)’—즉, 인간이 의도하지도, 제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 새로운 결과를 산출하는 능력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이 분야에서는 ‘블랙박스 문제(black box problem)’라고 부릅니다.
“설명하지 못하면 통제할 수도 없다.”
힌튼의 심정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라 할 만합니다.
정신과학자로서 저 역시 힌튼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다소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텍스트 기반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창발적 능력’이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속한 정신과학 분야로 한정해서 하는 말입니다.
LLM 기반 인공지능의 창발성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의 통계적 패턴을 학습하여, 그럴듯하고 세련된 문장을 인간의 취향에 맞게 생성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장 생성’의 능력일 뿐, 텍스트를 넘어 본래적 의미, 글쓴이의 의도, 주관적 경험, 실존적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의 개발과 확산에는 반드시 정신과학자의 메타적 분석과 검토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빠르고 정교하다 해도, 그것만으로 인간의 전인적 활동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생활세계는 공학적 환경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미와 가치, 정서, 사회적 규범, 암묵적 합의, 예측 불가능한 비합리성이 얽히고설켜 작동하는 ‘열린 세계’—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곳입니다.
저는 인공지능 산업의 흐름을 조금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현대 사회는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기술적 평준화가 이루어진 시대입니다. 오늘날 웬만한 국가는 기본적 공학 설계와 제조, 운영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 미국 같은 나라가 부가가치가 낮은 제조업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고, 대신 기획·설계·품질 관리로 부를 창출하는 구조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내세워야 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전기 자동차였지만, 배터리 안정성, 충전 인프라, 기후별 성능 저하 등 물리적 한계가 드러나면서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다음으로 등장한 카드가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저는 이것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앞세운, 일종의 ‘산업 패권용 풍선 띄우기’가 아닐까 의심합니다. 자본을 유치하고 산업 생태계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미국과 몇몇 기술 선진국의 계산된 과잉 대응 말입니다. 그래서 이른바 AGI(범용 인공지능), ASI(초지능) 같은 용어는 어쩌면 이 패권 경쟁의 ‘슬로건’ 또는 ‘홍보성 카피’ 일지도 모릅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인공지능 핵심 코드의 공개(Open Source)를 카드로 내세웠습니다. 이는 미국 중심의 폐쇄적 기술 패권 정책에 대한 조직적 반기이자, 전략적 대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초거대 인공지능은 자본·칩·데이터 등으로 높은 진입장벽을 친 ‘폐쇄형 생태계 전략’, 반면 중국은 ‘개방형 분산 전략’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미국: “우리가 만든 궁극의 AGI를 API로 쓰게 해 줄게.” (중앙집권적·종속적)
중국: “우리가 만든 알고리듬을 공짜로 줄게. 네가 알아서 발전시켜.” (분산적·개방적)
이 거대한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 정부는 100조 원 규모의 펀드를 내세워 인공지능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에 NVIDIA의 황 사장은 26만 개의 GPU로 화답했지요. NVIDIA 입장에서는 SK와 삼성의 HBM(고대역폭 메모리) 지원 없이는 사업이 어렵기 때문에, 이는 일종의 전략적 ‘고객 관리’입니다. 동시에 한국을 미국의 폐쇄형 생태계에 묶어두려는 포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26만 개의 GPU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소버린 AI(Sovereign AI)’—즉 국가가 자체적으로 통제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할까요? 그렇게 만든 인공지능이 과연 오픈 AI, 구글, 테슬라 등과 경쟁이 가능할까요? 명확한 기획과 전략이 없다면, 한국은 ‘고비용 종속형 갈라파고스’로 전락할 위험도 있습니다.
향후 인공지능은 결국 차세대 플랫폼 선점 경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선 인공지능은 B2C(기업–소비자 거래)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을 발휘할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절감과 동시에 빠르고 정확한 고객 대응을 통해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술의 환각(hallucination)과 오류가 줄고, 신뢰도가 높아진다면, 기업은 고객 응대에 인공지능을 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다음 단계는 B2B(기업 간 거래) 효율화입니다. 이는 B2C보다 훨씬 거대한 시장이며, 생산성 향상이라는 추가적 혜택까지 가져옵니다. 또한 개인이 사용하는 모든 컴퓨팅 환경과 디지털 기기에 인공지능이 API 형태로 융합될 것입니다.
결국 인류의 생활세계 속에서 인공지능이 없는 공간은 상상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의 거대한 통합 생태계로 발전할 것입니다. 이 흐름에서 도태된다면, 우리는 다시금 경제적 종속의 단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참여는 필수지만,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지금은 이미 미국 중심의 폐쇄적 장막이 형성되어 가는 상황입니다. 그 벽을 깨고 독립적 인공지능 시장을 구축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지혜와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그저 “잘되길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답답할 따름입니다.
물론 인공지능 산업계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 안정성과 신뢰입니다. 이것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이 산업의 미래 역시 밝다고 볼 수 없습니다. 결국 인공지능 경쟁의 최종 승자는, ‘블랙박스 문제’와 ‘환각’을 해결해 공적 신뢰를 확보하는 쪽이 될 것입니다. 그 신뢰가 곧 경제적 해자(Moat)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