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발리 비건 여행ㅣ홍콩 경유 관광편
발리행 경유 비행기들의 긴 대기시간과 캐세이퍼시픽의 저렴한 항공권의 조합으로, 발리 가는 김에 홍콩도 관광하기로 결정!
그런데 문제는 홍콩은 외국인 대상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완전히 풀지 않은데에 있었다. 입국 전부터 해야 할 것들이 어찌나 많던지... 홍콩을 본격적으로 여행할 거였다면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경유하는 겸 잠깐 관광할 생각이었던 나에게는 그 모든 절차가 너무 복잡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다 겪어본 나의 결론은, 홍콩이 외국인 대상 방역 정책을 완화하지 않는 이상 경유로 홍콩 공항 밖을 빠져나가는 것을 추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목적지인 발리는 코로나 관련해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데 잠깐 경유하는 홍콩 때문에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짜증이 솟구치는 경험을 상당히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
홍콩 입국 절차 관련해서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따로 정리해 뒀다.
홍콩에서는 1박만 하고 바로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발리에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짐은 발리로 부쳐놨다. 홍콩용 짐은 백팩에 간단하게 챙겨 기내에 들고 탔기 때문에 홍콩 공항에서 따로 짐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24시간이 채 되지 않는 레이아웃에서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시간! 홍콩 시내로 빠르게 집입하기 위해 클룩에서 공항철도 티켓도 미리 구입해 뒀다. (바우처를 메일로 보내주는데, 바우처에 있는 큐알 코드만 찍으면 공항 철도에 바로 탑승할 수 있다.)
공항 철도가 정차하는 역은 홍콩역, 구룡역, 칭이역이었는데 이 중 숙소와 가장 가까운 역인 구룡(Kowloon) 역 왕복 티켓을 구입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큰 트라우마를 남길지 누가 알았겠어...
구룡역에서 숙소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면 14분, 도보로 가면 27분
대중교통이나 도보나 큰 차이가 없어서 시내구경도 하면서 슬렁슬렁 걸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구룡역을 빠져나왔다. 아니,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역 밖으로 나오니 보이는 건 주차장과 도로뿐. 사람이 걸어 다니는 인도가 없어서 다른 출구를 찾아봤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구글 지도에도 몇 번 출구로 나가라는 안내가 없었다.)
다른 출구로 나가니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이 나와서 쭉 가려는데 갑자기 사람이 막아선다. 공사 중이라 이 길로는 갈 수 없단다.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옆길로 가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비원이 막아선다. 아파트 주민이 아니면 이 길을 지나갈 수 없단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이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택시를 탔어야 했다.)
하지만 쓸데없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구글지도를 믿고 다시 경로 찾기를 시도했다. 구룡역 안으로 다시 들어가 다른 출구로 나가보려는데 갑자기 쇼핑몰이 등장. 이건 또 뭐지? 싶지만 쇼핑몰이면 당연히 출구가 있겠지 싶어 문 밖으로 나가봤다.
그런데 이번에도 보이는 건 도로. 경비원이 막아선다. 지나갈 수 없단다. ^^^^^^
그 뒤로도 "이 길로 나갈 수 없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때부터 친구랑 나는 서서히 정신줄을 놓기 시작. 1박용이긴 해도 둘 다 짐이 있었고, 오전에 비행기에서 기내식 먹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상태였다.
식당에서 뭐라도 먹으면서 차분히 그 사태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가 갔을 당시 홍콩은 막 입국한 외국인에게는 식당, 카페 내 취식을 금지해놓은 상태였다. (테이크아웃해서 야외에서 먹거나 호텔 내에서 먹는 것만 허용)
* 참고로 홍콩에서는 실내는 물론 실외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해야 한다.
구룡역이 이상한 건지, 우리가 길을 겁나게 못 찾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 시간 이상 헤매고 나니 걸어서 가는 건 아니다 싶어 대중교통으로 가기로 했다.
문제는 이것도 쉽지 않았다는 것.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홍콩의 교통카드인 옥토퍼스 카드를 사서 충전을 한 후 사용해야 하는데 옥토퍼스 카드는 현금으로만 구입이 가능했다. 트래블 월렛만 믿고 환전도 안 해 간 상황이라 ATM 기기를 찾아 또 걷기 시작했다.
ATM을 찾아 역 안을 걷고 또 걷다 보니 에너지 바닥. 결국 택시를 타기로 결정. (홍콩 택시는 현금만 받는다. 그러니 택시를 타려고 해도 현금이 꼭 필요하다.)
택시 타니 10분 만에 숙소에 도착.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택시 탔지 ^^^^^ 설마 역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줄 알았냐고 ^^^^^
'지하철 역을 걸어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역이 있고 출구가 있고 길이 있는데 걸어서 나갈 수 없는 경험을 난생처음 해본 것이다. 하아... 홍콩... 구룡역....
비행기는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다. 그래서 공항을 빠져나왔을 땐 오후 2시도 안 되었던 상황. 낮부터 홍콩 알차게 구경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구룡역에서 헤매느라 시간을 다 썼다... 숙소에 도착하니 5시가 다 되었더라...
지칠 대로 지친 데다가 + 길이 있어도 지나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걸 경험한 우리는 호텔을 나가는 게 조금 무서워졌다. 거기다 식당에 가도 매장 내 취식이 불가하기 때문에 테이크 아웃해서 호텔에 가져와서 먹어야 했다. 그러느니 룸 서비스 시켜서 먹을까 했는데, 너무 비싸더라... 깔끔하게 포기!
없는 힘 끌어 모아 다시 나갔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곳곳에 트리가 많았다. (홍콩인들의 포토 스폿인지 사진 찍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걷고 또 걸어 겨우 찾아낸 비건 식당 green common. 이 식당도 쇼핑몰 안에 위치해서 찾아내는데 한참 걸렸다. (홍콩은 어딜 가나 쇼핑몰이더라...)
테이크아웃해서 호텔에 가져와 밥 먹고 다시 힘을 끌어모아 밖으로 나갔다. 홍콩은 뭐니 뭐니 해도 야경이니까!
호텔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침사추이 시계탑이 있었다.
그리고 시계탑 근처에 야경을 볼 수 있는 침사추이 프로므나드가 있었다. 일종의 산책로 같은 곳이었는데 야경을 편히 볼 수 있도록 의자도 있는 곳이었다.
매일 저녁 8시에 시작하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그제야 홍콩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야경을 보고 나자 해외여행 온 기분이 난 우리는 바로 숙소로 들어가기 아쉬워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또 길 헤맬까 봐 무서워서 멀리는 못 감)
그러다 궁금해서 들어가 본 헤리티지 1881.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하게 되어 있었는데 여기도 포토 스폿인지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11월 30일, 12월 9일에 홍콩에 있어보니 한국의 초가을 기온이랑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습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여름의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한국 9월 정도의 날씨랄까? 전체적으로 습도는 높았고, 낮에 더울 때는 반팔도 괜찮았지만 해가 지고 나면 꽤 쌀쌀했다.
나는 가을용 긴팔 셔츠, 가을용 긴 바지 (둘 다 여름에 입기에는 도톰한 소재)를 입었고 위에 간절기용 카디건을 걸쳤다. 날이 더우면 카디건을 벗고, 조금 쌀쌀해지면 카디건을 걸치니 딱 좋았다.
*여름용 반팔 원피스를 입고 (스타킹 안 신음) 위에 면 맨투맨을 입었던 친구는 밤이 되자 좀 춥다고 했다.
예상외로 너무 헤맨 탓에 홍콩 관광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센트럴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숙소가 있었던 침사추이도 저녁에 잠깐 돌아본 정도이니, 누가 물어보면 홍콩은 가봤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안 갔다고 하기에도 뭐 한 상황.
짧지만 강한 인상트라우마을 남긴 홍콩을 떠나 이제는 발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