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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강아지 Dec 22. 2021

보이저 1호


1977년 발사된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에는

혹시 볼지도 모르는 외계인에게 보낸 레코드가 실려있다.


각 나라의 인사말과 지구에서 들을 수 있는 파도 소리, 천둥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와 아기의 우는 소리, 음악소리, 심장 박동 소리 등이 녹음되어 있고 지구의 위치와 지구의 여러 모습, 남녀의 모습 등이 담겨있다고 한다.


탐사선에 이런 것들이 실려 있다니 뭔가 뭉클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인간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계인에게 쓴 편지라고 하지만 뭔가 지구가

머나먼 미래의 자신에게 보낸 편지 같기도 했다. 


문득 내가 블로그에 쓰는 글들이

보이저 탐사선의 레코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데

내가 없을 때도 내가 남긴 이 기록들이 우주처럼 광활한

인터넷 세상에 남아 있을 테니까.


내가 없을 때도 누군가 내 글을 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부터인 것 같다.

학교 숙제로 써가는 일기 말고 혼자 쓰는 일기를 썼었다.

학교 생활이 힘들어서 일기에 내 마음을 다 쏟아내면

그나마 좀 괜찮았다.

종이 위에서 슬플 때는 뛰어내리고

기쁠 때는 뛰어다니고.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이 글 쓰는 취미를 생기게 해 준 거니까 그건 감사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난 사람들한테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기장에는 잘한다.

존재감 없는 내가 존재할 수 있어서 좋다.


까만 우주에 딸그락거리는 낡은 내 탐사선.

돌강아지 1호.



내 탐사선에 남기는 마지막 편지를 생각해보았다.


'다른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되고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들, 경험들, 동식물, 자연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맨날 불평불만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나는 운이 좋았었다고. 그리고 내가 상처 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다음에는 사랑하는 법을 배워서 오겠다.'


내 탐사선에는 강산에 님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노래를 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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