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에선 아프지 마
아침 일찍 나갈 채비를 했다.
4살 많은 형준이의 사촌형이 영정사진을 들었다. 사진 속 형준이는 해맑게 미소 짓고 있다. 몇 년 전 괌 여행 가기 전에 여권을 만들면서 찍은 증명사진인데, 그때는 저 사진이 저렇게 활용될 거라 생각이나 했을까...
아이 아빠의 친구들이 운구하고 명복공원으로 향했다.
명복공원에는 화장을 기다리는 수많은 유족이 있었다. 그중에 우리 아이가 제일 어리다. 죽음 앞에 순서 없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했다. 왜 우리 아이가 저기 있는 거냐고...
순서가 다가오고,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하셨다.
"형준아, 가지 마... 엄마 두고 가지 마... 너 없이 어떻게 살라고... 안돼... 가지 마"
몇 시간 뒤 우리 아이는,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한 줌의 재로 변해 있었다.
허무했다. 이렇게 보낼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걸. 더 사랑해 줄 걸...
모든 일이 갑작스럽게 진행되었고, 정신을 차릴 틈도 없던 터라 봉안당에 안치해야 할지 어디 가까운 곳에 뿌려줘야 할지... 결정하는 과정도 쉽지가 않았다. 더욱이 하루 만에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어서, 안되면 다시 집에 데려가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던 중 다행히 사촌이모가 좋은 곳을 알려주셔서 수목장을 하게 되었다. 지금껏 병원에 갇혀 답답했을 텐데, 다시 봉안당 안에 가둬두고 싶지 않았다. 이제라도 넓고 자유로운 곳에서 신나게 뛰어다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형준아, 여기에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해. 대신 엄마가 자주 올게. 이제 아프지 말고, 하늘나라에서 즐겁고 씩씩하게 지내길 바라. 그리고 엄마가 너무 늦지 않게 너 만나러 갈게. 다음에도 꼭 엄마 아들로 다시 만나자."
그날은 속상하리만큼 날씨가 좋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겨울이 왔나 했는데, 그날은 햇살은 눈부시고 날은 얼마나 따뜻한지... '평소 같으면 이런 날씨에 형준이랑 나들이 갔을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형준이가 자기 때문에 엄마 아빠 힘들지 말라고 끝까지 배려해 주는구나' 싶었다.
착하디 착했던 내 아들...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내 아들이 되었을까. 아까워서 장가도 못 보내겠다'며 습관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려서 일찍 데려가 버리셨나.
이젠 정말 볼 수가 없다. 안을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