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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Jun 21. 2024

김밥은 힘이 세다.

아침이면 나는 늘 한 줄의 김밥을 만다. 친구들과 수다도 떨어야 하고, 세상 소식도 궁금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 고등학교 이학년 둘째는 잠이 부족하다, 아침을 편하게 식탁에 앉아서 먹는다는 것은 주말에나 가능하다. 턱관절이 약한 둘째는 김밥 속에 들어간 우엉을 씹기 힘들어한다. 냉장고에는 김밥용 단무지를 항상 쟁여 두고, 그때그때 있는 반찬들로 김밥을 만다. 깻잎을 넣은 참치김밥이나  참치와 묵은지를 볶아서 김밥을 말기도 하고 오이나 양파 장아찌를 넣고 깨소금과 참기름으로 조물조물한 밥으로 김밥을 만다. 어느 날은 전날 저녁에 먹고 남은 동태 전을 넣고 쌈무와 새싹으로 김밥을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 시어머님께서 고추장에 박아서 만든 마늘쫑 보내주셨다.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장아찌 냄새랑 똑같았다. 냄새는  오래도록 기억되나 보다. 고유한 냄새는 기억을 훅 불러들인다. 마늘 쫑을 넣고  김밥을 말아 봤다. 둘째는 김밥 속에 여러 가지 재료가 잔뜩 들어 있는 것을 먹기 싫어한다. 한꺼번에 몰려오는 재료들을 씹기도, 소화시키기도 힘들어한다. 그래서 단무지를 기본으로 하여 세 가지 재료를 넣는데 오늘은 계란을 풀어서 채 썬 당근과 함께 부치고 들기름으로 무친 고춧잎나물로 김밥을 만들었다. 어쩌다 보니 김밥 속 재료가 4 가지가 되었다. 방 책상 위에 아침밥을 올려 두고 아이를 깨웠다. 밍그적거리던 아이는 일어나 눈도 못 뜨고 김밥 한 알을 먹으면서 생활복 윗도리에 한쪽 팔을 끼우고 사과 한쪽을 물고 한쪽 다리를 학교 체육복 반바지에 넣는다.

둘째가 등교를 하고 방에 들어가 보니, 서너 알쯤 먹었다. 그나마 사과는 반쯤 먹었다.

간혹 접시가 깔끔하게 비워진 날은 내 뱃속이 든든하다. 새 모이만큼 먹는 아침밥을 시간이 없어 못 먹는 날은 점심시간까지 배가 너무 고프다고 한다. 김밥 세알에도 하루를 굴릴 만큼의 힘이 있나 보다. 김밥은 힘이 세다.

크게 힘주지 않고 설렁설렁 마는 김밥은 매일의 힘이다. 별거 없는 것들로 채워진 별거 없는 하루가 별거 없이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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