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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Jul 20. 2024

횡단보도에서 글쓰기


어떤 예능에서 딸이 엄마에게 엄마는 아내로서 백점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몇 점일까 생각해 보니 빵점에 가까웠다. 나는 사랑과 존중을 받는 아내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남편이 자기에게 먼저 죽으면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아내가 죽고 나면 너무 심심할 것 같다고.  나는 내가 죽어도 남편은  심심할 틈이 없을 거라 했다.

남편은 만일  아내 보다 먼저 죽는다면 억울해서 절대 관뚜껑 안 닫고 버팅길 사람이다.

아마도 아내가 있었던 기억도 못할 것이다.

함께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남편. 배우자가 없으면 심심할 관계란 서로에게 얼마나 다정한 것일까? 다만 상상해 볼 뿐이다.



아이들에게 나는 몇 점이나 될까? 생각해 보았다.

스물한 살이 된 아이를 보니, 나는 50점짜리 엄마였다. 나는 좋은 엄마라고 착각을 하고 살았던 적도 있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참고 견디며 살았던 적도 있으나  그것은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 싶은 마음처럼, 하늘의 별처럼 빛나기만 할 뿐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로서의 나는 몇 점일까?

백점만점에 백점이다. 나는 상황을 극복하지는 못해도 견디며 살아왔다. 두 발을 땅에 딱 붙이고 도망가지 않고 살아왔다. 장승처럼 있던 자리에 늘 있으며 살았다. 나의 무능을 품고, 업고, 짊어지고, 그것만이라도 만점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나의 감정들과 고달픔들과 그리움과 나를 당기는 호기심들에 섞여서 살아가는 하루다.  앞에 아직도 이렇게 여러 갈래의 길들이 남아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사실, 나는 아직도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 싶고, 좋은 엄마이고 싶다는 꿈을 꾼다. 꿈만 꾼다는데 그게 뭐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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