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춤이 좋았다. 어려서부터 TV에 나오는 가수들의 춤을 보며 몸을 흔들어대던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무용을 시작했다. 넉넉지 못한 집안형편 때문에 춤을 못 배운 나는 가슴에 한이 맺혔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겠다.’
무용을 시작했다. 좋은 환경에서 일찍부터 무용을 시작한 친구들을 보면서 무용을 늦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내 환경에 대한 박탈감과 부모님에 대한 원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무용을 하니 살 것 같았다. 드디어 사는 것 같았다. 불나방처럼 춤에 미쳐서 살았다. 그렇게 무용과를 졸업하고 무용단에 들어가면서 무용수로 작업을 시작했다.
무대 위의 세계가 펼쳐지면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간다. 격렬한 움직임이 쌓이고 계속되면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감정이 요동치고 격앙된다. 동작을 수행하는 것이 몸인지 마음인지 더 이상 구분이 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혼연일체가 된다. 그 상태를 극단으로 몰아붙여 신체허용치에 다다를 때, 무아지경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초월성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내 육신의 껍데기는 뭍에 나온 물고기 같다. 헐떡대며 움직임을 수행하느라 고통스러운데, 그 속에 나는 이상하리만큼 자유로웠다. 황홀했다. 마침내 이 불완전한 육신의 껍데기를 벗어나 다른 무한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연 무대는 내 나름대로의 정화의식이나 제의 같았다. 하얀 재처럼 나를 순전하게 불태워 어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길. 그것은 무한과 자유의 세계, 충만함과 초월의 세계였다. 그 순간에는 이 세상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으며 어떤 것도 정말 상관이 없었다. 그 충일하고 은밀한 황홀감은 그야말로 나만의 것이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나에게 이런 감각을 주지 못했다. 나는 이대로 무대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무대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무용은 점점 강박과 집착이 되어갔다. 외부의 기준과 잣대에 잘 맞아떨어짐으로써 내 존재와 실력에 대한 불안과 의심을 해소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을 향해 한 판 한 판 퀘스트를 깨어가듯 춤을 추고 있었다. 내가 살 길은 오로지 살아남고 인정받는 것이었다.
‘아직 부족해, 더 가야 돼, 더 가야 된다고. 원래 참고 채찍질하면서 가는 거야, 원래 이런 것이라고!’
나는 자주 속에서 문드러졌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이상향이라고 생각한 곳에 죽어라 다가갈수록 그것은 딱 그만큼 저만치 위로 올라가있었다. 대체 얼마나 뼈를 더 갈아 넣어야 저 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언제쯤 이 필사의 처절한 고군분투가 끝날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온전해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불현듯 나는 깨닫게 되었다. 절대로 끝이 없을 거라는 걸. 외부는 항상 빛나는 이상과 기준으로 작동할 것이며, 그 외부를 이상향으로 설정한 나는 항상 부족하고 충분치 않을 것임을. 취약하고 불안한 나는 무한 반복되는 그 쳇바퀴 속에서 평생토록 죽어라 달릴 것이었다. 평생토록 고통스러운 목마름에 죽어라 발버둥 칠 것이었다.
나는 무용수 활동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그 시기에 무용을 가르치는 선생의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엄청난 실력이 있는 것도, 탁월한 교수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 진실하게 일을 했다. 무용, 무대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날 만큼 소진되었던 나는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춤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각각의 시각도, 그 관계도 천천히 달라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마흔이 된 시점에서 이렇게 실존적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다. 눈을 떠보니 나는 무용만 하고 마흔이 되어 있었고 무용으로 밥벌이 하느라 분주한 일상 외에 남은 것도, 이룬 것도 하나도 없었다. 그토록 쏟아 부은 내 시간과 에너지, 그 모든 피땀은 지금의 현실 앞에 완전히 날아갔다. 극심한 허탈과 소요 속에서 필사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무엇을 원하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