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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J Sep 03. 2022

"너의 목소리가 들려"

어느 날, 노래 가사 처럼.

처음 미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할로윈 행사가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그런 날에 무척 진심이라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까지 코스튬을 입고 밤 늦게까지 돌아다니면서 trick-or-treat 을 한다.

본 행사가 있기 며칠 전, 동네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저녁 행사를 한다기에 용기를 내어 아이들과 찾아가 게임을 하는 애들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는 순간,


"자기야,"


나는 분명 들었다.

내 뒤에서 익숙하고 온화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남편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흠칫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았는데 남편은 당연히 그 자리에 없었다.

혹시 사람들에 가려 못찾은 건 아닌지, 찾고 또 찾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시야가 뿌얘지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짧은   동안, 남편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는  때에 나는 남편이 정말 우리 몰래 찾아온  아닌지 

기대했나보다.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실망했다.

분명 남편 목소리였는데.


미국은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가족 행사가 많다.

이제는 남편없이 나 혼자 익숙하게 아이들 학교에 가고, 동네 행사가 열리면 아이들과 놀러도 나가지만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해가 지면 절대 밖에 나가지 않았다.

안전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비교적 안전한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해질녘의 고즈넉함이 주는 쓸쓸함을 온 몸으로 감당해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저녁 특유의 그 잔잔한 냄새를 견딜 수가 없었다.

'별 맛집'인 우리 집 마당에서 잠시 동안 밤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도 싫었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내 옆에 있는 남자와 아이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선물을 주신 그 분께

나도 모르게 감사를 고백하게 했던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버겁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광활한 우주에, 커다란 지구에 우리 셋만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외로워서.   

모르긴 몰라도 다른 가족들은 '그래도' 모두 함께 있으니 행복할텐데 우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시간이 주는 익숙함 역시 그 분의 커다란 선물임을 깨닫는다.  

이제 남편이 없어도, 아빠가 없어도 저녁에 나갈 수 있고 가족 단위 행사에 늘 그래왔듯

자연스레 셋이 참여하기도 한다.

조금은 쓸쓸한 저녁이 되도, '집에 빨리 가자'라고 채근하기 보다,

'오늘 저녁은 피자 어때?'라며 아이들과 손을 잡고 조금은 신나게 동네 피자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순간을 즐기고, 기회를 감사히 여기기로 마음 먹는다.

주어진 시간에 더 행복할 걸 그랬어, 라는 후회를 하지 않도록.

그 때로 돌아간다면 더 즐겁게 보낼텐데, 라는 아쉬움이 없도록.

대신 우리는 사진과 동영상으로 순간을 기록하고 함께 하지 못한 이와 가능한 한 많이 공유한다.


나는 더 이상 남편의 환청을 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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