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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J Sep 03. 2022

미친 듯이 싸우던 순간에

미친 듯이 그리웠다.

미국에 다시 들어가네 마네하면서 남편과 하루가 멀다 않고 말다툼을 할 때,

미친 듯이 싸우던 순간에 미친 듯이 미국이 그리웠다.

나는 왜 그렇게도 떠나고 싶던 이 곳이 그렇게 그리웠을까.


숱한 밤,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웠을 때 상상했다.

지금 사실은 꿈이어서 아침에 눈을 뜨면 내 집 침대일지도 몰라.

옆에는 남편이 세상 모르게 코를 골고 자고 있고, 아이들이 배를 드러내고 자고 있는 내 집.   

그래, 이건 지금 꿈일지도 몰라.


요즘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아이들은 뒤돌아 서면 배가 고프고, 도시락을 싸야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장을 봐야만 한다. 그것도 트레이더 조, 코스트코, 한인 마트, 정 급할 땐 동네 마트라도 가서.

이제는 내가 가는 모든 곳의 구획 별로 어떤 물건이, 어떻게 채워져 있는지 꿰뚫고 있을 정도로 다 알고 있는 마트들 특유의 그 차가운 공기와 분위기가 싫었다.

아이들 방학을 맞아 한국에 나왔을 때, 마트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타지에서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강박적으로 뿌려대던 손 소독제의 냄새는, 독한 알콜 냄새 때문이 아니라

뜬금없게도 미국 생활을 연상시켜서 끔찍했다.

그럴 정도로 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남편과 아픈 부모님을 뒤로 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내려서

익숙한 동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언제부터인가 이 곳을 편안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을.

어서 도망쳐 나오고 싶었지만, 이제는 도망칠 곳이 되었다는 것을.

평생 처음 겪어보는 고단함과 외로움, 막중한 책임감 등을 이 곳에 묻어 두고 왔더니

그것들을 거름삼아 새로운 좋은 것들이 자라나 있더라 는 것을.

평온함, 희망, 도전과 기대와 같은.


하지만 이곳을 절대로 도피처로 삼지는 않으리라 마음 먹는다.

'현실 도피'라는 환각에 취해 살지 않기로, 두 눈을 부릅뜨고 현실을 마주하기로 한다.

남편을 이제는 내 자신처럼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기 힘들었던 부분들을,

남편에게 모든걸 내보일 수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보이고 싶지 않던 나의 약점들을,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지만 그러면서도 때때로 그 매듭을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버리고 싶던 순간들을,

그러니까 차라리 내 몸과 마음의 고단함과 맞바꾸고 싶던 많은 것들을 말이다.

맞바꾸지 않고 그대로 감당해 낼 것이다. 있는 그대로.  

나도 모르게 도망치고 싶었던 내 자신을 알아차린다.   


그러기엔  곳과  시간을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서, 라는 스스로의 대답을 이끌어 낸다.

그리고 좋은 것들이 새로 자라난 것을 보고 '그래 내가 그랬었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내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서.

다시 남편과 부모님을 비롯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살아가면서 반드시 마주쳐야 하는 이런저런, 크고 작은, 그러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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