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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원 Apr 18. 2024

한시름 놓았다

‘짓다’라는 말이 참 좋다. ‘만들다’라는 친숙한 말을 두고 ‘짓다’라는 말을 애용하는지 묻는다면 이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밥, 옷, 집, 이름처럼 내 삶에 필수적인 것 뒤에 자리한다는 점이며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 행위에 쓰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짓는다고 표현할 때는 누군가를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손녀 이름을 짓게 되었다.

이 일은 한 사람의 삶을 통틀어 동반하는 중요한 부분이므로,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름은 단순한 라벨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과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자, 그 사람을 세상에 소개하는 첫인상이 된다. 

 건천에 있는 Y 절의 스님이 ‘정희’, ‘진희’, ‘지희’ 중 하나를 선택해서 쓰란다. 여자아이 이름으로는 도윤, 하윤, 민서, 연우 등이 많이 선택되고 있는 요즘에, 아내와 나는 모두 ‘희’자가 들어가는 흔한 이름은 피하고 싶었다.

사부인도 자식 시대 여자아이 이름들이라 촌스럽다며 아쉬워하셨다. 

 내 기준으로 보면 독특한 이름은 발음이나 철자가 어려울 수 있으니 발음이 쉽고 기억하기 좋아야 한다.

할아버지 이름 ‘안창호’처럼 도산 선생의 유산이나 전통을 반영하는 이름도 생각하면서 그 부모나 가족이 원하는 특정한 의미나 희망을 담을 수도 있어야 한다. 

 아무튼, 정희란 이름 속에는 “막힘이 없어 큰 고생이 없고 식록(食祿)에 근심이 없다. 창고에 쌓고 또 쌓는다. 수명장수하고 부자를 기약하도다. 이 괘상(卦象)은 대부분 부와 귀가 쌍전하며 부부 금실도 좋아 일생 형통할 수다.”라는 작명 종이에 적힌 손글씨 문장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외가에서 삼칠 나기 전에 가족 구성원의 의견을 들어 성과 이름이 잘 어울리는지, 아이가 성장했을 때 이름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고민하여 ‘정희’로 정했다. 

 손녀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열이 나서 동네 소아청소년과 진료 대기 중 ‘배정희’ 이름을 부르면서 간호사는 보호자로 온 엄마가 환자인 줄 알았다면서 아이 이름을 신기해했다.

병원 대기실에서의 작은 오해는 우리에게 이름이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각자의 삶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릇임을 상기시킨 에피소드로 여태껏 남아있다. 

 아침 운동 다니는 학교 교문 위의 현수막에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지덕체(智德體)에서 체인지(體仁智)로 Change! 건강과 인성을 기반으로, 지혜를 길러가는 00고 믿어요. 함께해요. 우리 학교”

이를 보는 순간 건강하며 마음도 쑥쑥 커가는 지혜로운 손녀 생각에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이런저런 정성을 담은 ‘이름을 짓는다’의 애씀 덕분에 우리 손녀는 별로 큰 병도 없고 탈도 없이 도담도담 성장하여 올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한시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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