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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얼른 Dec 29. 2022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나요?

<이터널 선샤인>


그 사람이랑 만난 걸 후회해.


종종 주변인들로부터 저런 말들을 듣곤 한다. 그들은 주로 이별직후였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말로 옛 연인의 모든 기억을 부정하고 싶을까?


[이 글은 스포가 없습니다. 이 영화 보라고 (혹은 또 보라고) 영업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터널 선샤인> 2005


영화 <이터널 선샤인> 속 주인공의 상황도 비슷해 보인다.

시작은 주인공 조엘(짐 캐리)의 평범한(그런데 무료하다고 느끼는) 일상에서 시작된다. 조엘은 밸런타인데이날 회사를 무단결근하고 반대방향인 몬택 행 열차에 탄다. 무료함을 벗어나고자 다소 파격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몬택에서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만난다. 내성적이고 차분한 조엘에 비해 클레멘타인은 다소 저돌적이고 즉흥적인 여성이다. 전혀 달라서일까. 조엘은 짧은 시간 그녀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첫 만남부터 '결혼'이야기를 꺼내는 클레멘타인의 이끌림대로 조엘은 그녀와 얼어붙은 강에 누워 별자리를 보는 데이트를 즐기며 사랑의 시작을 알린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멜로영화의 1막처럼 보인다. 이제 두 사람은 점점 더 격렬한 사랑을 나누다가, 강렬한 적대자가 등장해 둘 사이를 훼방을 놓고, 잠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 격렬한 키스를 하면 완성이다. 하지만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조엘이 차 안에서 심각하게 울고 있는 장면이 나오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엘이 클레멘타인을 찾아갔지만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아예 모르는 사람 취급을 할 뿐만 아니라 이미 새로운 연인이 생긴 상태다. 배신감과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조엘. 그는 이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클레멘타인이 조엘의 기억을 지우는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조엘은 곧바로 클레멘타인이 치료를 받았다던 그 병원(라쿠나사)을 찾아간다. 클레멘타인이 자신과의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 다시 한번 배신감과 혼란스러움을 느낀 그는 자신 역시도 똑같은 치료를 받기로 결심한다.



이 영화는 조엘의 기억을 지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조엘은 꿈속에서 1인칭 시점으로 기억이 없어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제야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 꿈 밖에선 라쿠나사의 의료진[스탠(마크 러팔로), 하워드(톰 윌킨슨)와 기술자들 [매리(커스틴 더스트), 패트릭(일라이저 우드)]가 조엘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병행된다. 꿈이기에 가능한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장면들을 보는 재미가 높고, 꿈 안팎으로 기억을 없애야 하는 캐릭터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롭다. (현시점에서 초호화 캐스팅이다...)




기억과 감정

생각해보면 기억은 점점 무뎌진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말이 식상해 보여도 사실 그만한 맞는 말이 없다. 몇 번의 이별을 겪은 나도 늘 아프고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큰 뭉텅이의 추억처럼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연인과의 사랑과 관련된 기억뿐 아니라)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들은 영영 지우고 싶을 만큼 괴롭지는 않지만, 이불킥 할 정도의 창피한 기억들은 더러 있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그 기억 자체가 아니라 그 기억과 함께하고 있는 감정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관객에게 물음을 던진다.

'과연 기억은 영원히 지워질 수 있을까.'


기억은 흐려지고, 왜곡되고, 재조립되지만 그와 함께 수반된 감정만은 가장 오래 유지되는 것 같다. 기억과 함께 기록된 감정까지도 잊혀지려면 아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렬한 감정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본다. 수많은 기억을 지운다 해도 진심이었던 강렬한 감정은 어딘가에 기억될 테니깐.


기억을 지우는 방식으로 이별을 맞이한 두 옛 연인,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과연 기억을 지우는 데 성공했을까?

그들이 맞는 새로운 아침은 무엇일까.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 <이터널 선샤인>은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에서 볼 수 있다. (광고 아님. 2022년 12월 29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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