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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현 Dec 04. 2020

왜 기자가 하고싶어요?

첫 보도가 나에게 남긴 답


“왜 기자가 하고 싶어요?” 내 꿈이 기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나에게 많이 하는 질문이다. 나중에 내가 언론사 공채 면접을 보게 된다면 들을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왜 기자가 하고 싶냐는 질문은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현직에 계신 한 기자 선배는 이 질문에 “내 기사로 작은 것이라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기자를 한 것 같아.”라고 답하셨다. 이 답을 듣고 나도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기자를 꿈 꾸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속한 팀에서 내보낸 보도의 파장을 보고 이 질문에 대한 내 답이 면접을 위한 답변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단독 보도. 이 단어를 들으면 큰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엄청 흥분이 되는 사람도, 심지어 ‘그게 뭐?’라고 대수롭지않게 반응 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있어서 단독 보도는 ‘짜릿함’이었다. MBC 기획취재팀에서 처음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먼저 했던 일은 바로 21대 국회의원들의 재산과 관련된 아이템이었다. 처음 선배들한테 이 내역을 입력하는게 어떤 아이템을 위한 것인지 설명을 들었다. 현직 국회의원들이 후보자 시절에 스스로 신고한 재산 내역과 당선 이후 공식적으로 공개되는 재산 내역을 비교해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다지 짜릿하지는 않았다. 그저 처음으로 내가 언론사의 취재에 참여한다는 설렘만 있었다.


첫 번째 미션은 주소찾기였다. 21대 국회의원들의 재산 내역을 비교함과 동시에 정부 정책에 맞춰 다주택자 의원들이 집을 팔았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게 가능하다고? 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는 일이었다. 여러 주소의 등기부를 뜯어보고 수십 번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단 2명의 집 주소만을 특정하고 하루가 끝나버린 날도 있었다. 조금 허무 하기도 했지만 막상 주소를 특정해 낼 때에는 마치 탐정이 된 것처럼 몰입하게 됐다. 하나를 찾으면 그만큼 쾌감이 들기도 했고 아슬아슬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면 ‘오늘 안에 내가 이 주소 찾는다’ 하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우리 팀에서는 이 일을 하면서 우스갯소리로 조만간 흥신소를 차려도 될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흥신소에 빙자한 주소찾기 작업이 모두 끝나고 두 번째로 주어진 미션은 전화 취재였다. 의원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보고 다주택 보유 의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었다. 교내 학보사와 저널리즘 스쿨 세미나를 하면서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취재한 경험이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인터뷰 거절을 당하거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면 뻘쭘하고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처음 인터뷰 거절을 당했을 때에 비해서는 많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첫 전화통화를 할 때 “안녕하세요, MBC 기획취재팀의 정다현이라고 합니다.” 하고 본인의 신분을 밝힐 때의 기분은 정말 생생하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있는 스스로가 어색하기도 했고 꿈에 한발짝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아 두근대기도 했다. 앞으로 내가 “000 정다현 기자입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말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달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 주기도 했다.


의원실 전화 인터뷰에서 정말 기억에 남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의원의 보좌관은 “아니 기자님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하면서 의원님이 다주택자는 맞지만 돈을 벌기 위한 목적도 아니고 시골에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집인데 그 집을 어떻게 파냐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30분 가까이 통화를 한 것 같다. 아직도 억울함이 남아있는지 전화가 끝난 후에는 “의원님 성명문이니 꼭 참고해 주십시오.” 라는 장문의 메시지도 왔다.


이렇게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소유에 대한 취재가 어느정도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는 재산 공개 내역을 하나씩 입력하기 시작했다. 시작 할 때는 잘 덤벙거리는 내가 혹시나 실수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했다. 그리고 숫자를 입력하면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예상치 못하게 큰 돈의 액수가 신고된 사람들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그 액수에 둔해져 5억이 그렇게 큰 금액처럼 느껴지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8월 27일. 처음으로 내가 야근을 한 날이었다. 이날 야근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게 되었다. 바로 다음날인 28일은 21대 국회의원들의 재산이 공식적으로 공개되는 날이었다. 원래 보도는 공개 당일에 맞춰서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전반적인 비교를 위해서는 200명 가까이 되는 의원들의 재산 내역을 입력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것이다. 27일 오후에 미리 받아본 공개 내역을 바로 입력하기 시작했다. 28일 보도 전까지 급하게 몇가지 항목만 추려서 기입을 완료했다. 아직까지 눈치를 많이 보던 시기였기에 나는 얼떨결에 야근을 하면서 데이터를 입력했다. 나는 변태같이 처음으로 야근한 이 날이 너무 흥미로웠다. 다시 보니 일기는 초등학교 방학숙제 이후로 쓰지 않던 내가 수첩에 메모를 남겨 놓기도 했다. 방송국에서 현직 기자 선배들과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고 경험을 하는 그 시간을 바랬기 때문인 것 같다.


대망의 보도 당일. 이 보도가 나가는 날은 정말 떠들썩했다. 코로나19의 전파가 심해져 사회적 거리두기는 2.5단계로 격상했다. 또한 아베 전 총리는 건강상의 문제로 사임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렇게 굵직한 뉴스들이 많아 나는 사람들이 “에휴,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그렇지 뭐” 하고 넘길 것 같았다. 당일 보도 직후에는 잠잠했다. 그러나 점차 재산이 눈에 띄게 증가한 의원들에 대한 후속보도를 해달라는 댓글들이 꾸준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팀은 기존에 재산 공개 내역을 비교하는 인터렉티브 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추가적으로 데이터를 기입하는 김에 재산 비교 내역을 조금 더 살펴보기로 했다.


그로부터 2주 뒤인 9월 10일, “[단독] 반년 동안 ‘3채’…쇼핑하듯 강남 아파트 샀다.” 김홍걸 의원의 재산 누락 보도가 나가고 네이버를 들어가 보니 실시간 검색어 1위에는 김홍걸 석자가 적혀있었다. 그 이후 다른 언론사들도 우리 팀의 보도를 인용하거나 재산 누락 국회의원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선관위에서 이와 같은 국회의원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물론 내가 쓴 기사도 아니었고 내가 리포트를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옆에서 선배들의 취재를 도우면서 함께 만든 보도가 이렇게 사회에 영향을 주는 모습을 보고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가 이거구나.” 이렇게 나의 입사 후 첫 보도는 내가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를 남긴 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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