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자랑할 거 있다 #광고 #아빠
드디어 읽었다. 오은영 박사님이 쓰신 책, '화해'. 예상 독자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서 겪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분들일 것이다.
그러나 가족과의 캠핑 일화를 연재하는 것만봐도 짐작하겠지만, 나는 꽤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물려줄 수 있는 돈이나 명예, 직업이 있는 거창한 집안은 아니지만.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이 항상 반기며 맞아주고, 나란히 전기장판 위에 앉아서 뜨끈하게 티비 보다가 스르륵 잠들다가 하는 그런 사람 냄새 나는 집.
브런치 작가 승인에 통과한지 2달 정도가 지났는데, 그 사이에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참 많이 고민을 했었다. 대학 생활 이야기를 쓰자니 브런치에는 대학생 독자가 적은 것 같고, 전문적인 이야기를 쓰자니 내 나이에 아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겨우 떠오른 것이 엄마, 아빠와의 캠핑 이야기였던 것이다. 조금씩 글을 쓰면서, '누군가 읽어주긴 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요즘은 다들 저조한 독서량에, 겨우 손 대는 책들도 다 '이렇게 하면 한 달만에 1000만원 누구나 번다' 이런 글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
정보성 글도 아니고, 전문성이 있는 것도,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닌 글이기 때문에 쓰면서도 이게 내 만족을 위한 글쓰기는 아닐까 했지만. 그럼에도 쓰는 것은, 그래도 글을 쓰는 동안은 내가 유일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만 겪은 경험, 그래서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시절 내가 부모님께 받았던 커다란 사랑 ...
나도 어떻게든 서울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 요즘 정말 많은 정보들을 찾아보고, 직접 실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정말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인스타그램, 유튜브만 열면 그 세계에서 이미 자리 잡은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니 어쩌니 하면서 당장 이것만 하면 몇 백, 몇 천만원 번다고 한다. 자기들 강의 들으면 그런 돈 따위 식은 죽 먹기고, 고로 가난한 건 선택이라는 격려인지 충고인지 모를 멘트들을 흘리는데
생각 없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는 격이 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영웅 신화들을 듣다 보면, 저 많은 돈을 쉽게 벌었다고, 너도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걸 정말 믿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물론 다 자기 노력이었겠지만 10만원 이하는 고민조차 안하고 쓴다는 그들에게, 당장 하루종일 배달 알바 뛰어도 버는 돈이 10만원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도 당신들 이야기만큼 노력 안 하는 건 아니라고.
이 시대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스타, 유튜브 하라는데 들어가기만 하면 치를 떨면서 나오게 된다. 전부 광고에 물들여서 더럽혀진 플랫폼. 돈만 좀 준다하면 #광고 붙여가며, 솔직함과 진정성이라고는 없이 올리는 콘텐츠들에 얻는 건 피로감과 우울감이다. 너무 많은 광고를 보다보니 그 무엇도 사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고.
쓸데 없는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던 차였고 그러다 오늘 오은영 박사님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읽으면서, 부모라면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경고 사항 중에 우리 부모님이 어긴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공감이 되었던 것은
아버지는 곧 여자의 발 앞에 마주 섰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아버지의 손에 커다란 들꽃다발이 들려 있었어요. 조금 전 아버지가 허리를 숙이셨던 이유가 이 들꽃다발 때문이었어요. 길가에 있는 들꽃을 꺾어서 꽃다발을 만드느라 그러셨던 거예요. 여자는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아버지는 그런 여자를 보며 활짝 웃으셨습니다. "ㅇㅇ아"라고 이름을 부르며 들꽃다발을 여자에게 내밀었어요.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아빠, 보고 싶었어요!"라고 외치며 아버지의 품에 와락 안겼습니다. 아버지와 그녀의 품 사이에는 들꽃다발이 끼여 있었어요. 은은한 들꽃향기가 그녀의 코끝을 찔렀습니다. 행복감이 여자의 온 몸을 감쌌습니다.
"여자에게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굉장히 큰 고통의 순간이 몇 번 있었어요.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날까 하는 마음에 삶을 다 내려놓고 싶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삶으로 다시 이끌어 준 것은 그 들꽃 향기였어요. 그 향기를 떠올리면 그때 그 들꽃다발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 날이 기억납니다. 그러면 여자는 '그때 참 행복했어'하면서 인생의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바로 이 부분이었다.
작년까지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그만두었고.
취업 준비를 해봤자 3년은 해야할 것 같다며, 그럴 바에 프리랜서로 살겠다는 딸에게.
늘 너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라고 말해주는 아빠.
매일 5시만 되면 전화와서 서울 사는 딸 생사 확인한다는 아빠.
우리 공주, 우리 예쁜 딸 하며 평생 치켜 세워주는 아빠.
말은 안 하지만 혼자 자리 잡기가 많이 힘들고, 말은 안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빠 생각을 많이 합니다. 돈과 명예는 아직 없고, 앞으로도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나에게는 가장 큰 우산인 부모님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거.
지금은 마음 놓고 캠핑 다니며 여행할 수 없지만,
아빠 손잡고 전국을 돌아다녔던 그 기억들을 추억하며
나 하나가 참으로 별 것 없게 느껴지는 백수 생활을 견딥니다.
캠핑 이야기를 내가 왜 쓰고 있을까, 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 답을 내린 결론은 여기까지고
캠핑족 아빠와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