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 즘,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을 나섰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유모차에 탄 아기와 함께 산책을 시작한 것이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저 발길 닿는 데로 이리 저리로 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어떤 날은 아파트 단지 안 산책길을 빙빙 돌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조금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오기도 했다. 나는 평생 '집돌이'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을 제외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집을 나섰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도 딱히 갈 곳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연고가 전혀 없던 나는, 딱히 갈만한 곳도, 만나자고 연락할 만한사람도 도저히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아빠인 나는 늘 아가와 함께였지만, 이야기 나눌 이 하나 없이 떠도는 외톨이 신세나 다름이 없었다.
집을 나서는 옷차림이 얇아질수록 아기가유모차에 얌전히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아기는 산책을 나서기 무섭게 유모차에서 몸부림치며 두 발을 땅에 딛고 서려고 했다. 유모차 산책 코스는 점점 짧아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산책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은 집 앞에 있는 놀이터가 되고야 말았다.
오전에는 놀이터가 항상 휑했다. 어쩌면 그래서 다행이다 싶었다. 바닥은 푹신푹신했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언니, 오빠들도 없으니, 놀이터는 이 '쪼꼬미'의 걸음마 연습을 위한 최적의 훈련장이나 다름없었다. 유모차에 꼭 붙어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던 것도 잠시, 아기는 흔들흔들, 뒤뚱뒤뚱 발을 번갈아 가며 걸음을 옮기더니, 끝끝내 놀이터의 유일한 점령군으로서 위엄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
오후 놀이터의 모습은 오전모습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홀로 놀이터를 지키던 소인국 아가에게, 책가방을 둘러멘 초등학교 언니, 오빠들의 모습은 흡사 '걸리버'를 본 것과도 같았을 것이다. 수많은 걸리버들이 계단을 호다닥 뛰어 올라가서 쭉 뻗은 미끄럼틀위로 미끄러지고, 트램펄린 위에서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이 뛰어오르며, 그네를 타고 저 멀리 우주로 솟구치는 장면을 보며 아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아마 장차 있을 위대한 뜀박질을 위한 살아있는 시청각 교육이 아니었을까?
걸리버 언니, 오빠들이 한차례 놀이터를 휩쓸고 지나가면, 아기는 그나마 만만한 상대들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놀이터에 들른 유치원생 작은 언니, 오빠들과 어린이집 꼬맹이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어린이들 곁에 있는 아이들의 엄마와 할머니들까지. 하지만 나는 걸리버 언니, 오빠들을 만나는 시간보다 이 시간이 더 긴장되는 시간일 수밖에 없었다. 놀이터를 가득 채운 많은 인류 속에, 성인 남자는 나 혼자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눈으로 뜀박질을 익힌 아기는 다소 만만한 상대들 사이에서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이리저리로 발을 뻗고 다녔다. 그러다 보면 여기 작은 언니들, 저기 작은 오빠들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게 되었다.자연스레 언니들, 오빠들과 함께 있는 엄마들, 할머니들 곁에 머무는 시간이 덤으로 따라왔다.
엄마의 부재 때문이었던 것일까? 아기는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도, 할머니에게도 전혀 어색함 없이 눈인사를 날리며 손을 뻗었고, '백이면 백' 모든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아기의 손길을 반기며 함박웃음으로화답해 주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놀이터를 찾다 보니, 어느샌가 아기에게는 이모와 할머니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물론 나도 수많은 아이들의 '삼촌'이 되어버렸다. 이제 하루라도 놀이터 출석을 거르게 되면, 놀이터 이웃들이 아기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새까만 얼굴의 낯선 남자, 그리고 언제나 그의 곁을 맴도는 아기의 존재를 기억해 주고 반겨주는 이들. 그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그들과 나누는 대화의 시간이 없었다면, 외롭고 지난한 육아의 시간들을 과연 버텨낼 수 있었을까?
날이 추워지고해가 일찍 지면서, 더 이상 놀이터로 걸음을 옮기기지 못하게 되었다. 늘 비슷한 시간에 놀이터를 중심으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던 수많은 이모와 할머니, 그리고 조카들을 언제 즘 또 볼 수 있으려나?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지면, 다시 하나둘씩 놀이터로 모여들겠지. 그러고 보니 아직 그들이 사는 곳도, 그들의 이름도 알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생면부지였던 이들이 'We are the world'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그곳,놀이터. 그곳에 있었던 모든 이들의 따뜻한 겨울을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