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태어난 지 이제 만 20개월이 되었고, 나의 육아휴직도 만 20개월을 맞이했다. 즉, 복직까지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이가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자고, 짧은 두 팔다리로 방바닥을 기어 다니려고 애쓸 때만 해도 하루가 한 달 같고, 일주일이 1년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뛰어다니는 아이를 좇아다니다 보니 한 달이 하루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늘 아이와 함께하는 아빠의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지나가는데, 출근 전 잠깐, 퇴근 후 잠깐 아이와 만나는 엄마의 시간은 얼마나 더 빠르게 느껴질까.
복직을 하면 다시 주말부부가 시작된다. 몇 달 전만 해도 '복직하면 육아에서 해방이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복직이 멀지 않은 지금, 복직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어린이집'이라는 새로운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할 아이도 걱정이지만, 아빠 없이 홀로 육아와 집안일을 감당하며 고군분투할 엄마의 고된 시간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놀이터나 키즈 카페, 문화센터에 갈 때마다 다른 아이 엄마들과 대화할 기회가 자주 생긴다. 아이가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하면, 아빠 혼자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게 쉽지 않겠다며 격려와 위로를 돌려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제 육아는 그래도 끝이 보이는데, 아내가 걱정이네요...'라고. 엄마 혼자 견뎌야 할 쓸쓸한 육아의 시간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느낀다.
아이가 깨어 있을 때는 한 시도 아이에게서 신경을 거둘 수 없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밀린 집안일을 할 때도 아이의 움직임에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다행히 아이가 잠든 시간에는 그동안 긴장해 있던 감각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그러다 아이의 '새근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채우면, 어느새 나는 3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내가 아이였을 때를 상상하게 된다. 곤히 자는 나의 곁을 지켜주는 엄마의 모습도 함께.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를 돌보던 엄마의 시간은 어땠을까? 주 6일 출근에 야근과 회식도 필수였던 시대였다던 데, 밤마다 아빠를 기다리며 엄마는 어떻게 그 고된 나날들을 견뎠을까? 아이 하나 먹이고 재우는 것도 이렇게 고역인데, 연년생 두 형제를 돌보던 엄마의 하루는 어땠을까? 엄마가 느꼈을 외로움과 고단함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두 아이를 돌보며 매일을 버텼던 엄마의 시간들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엄마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육아에 지쳐 이따금씩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곤 한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매번 비슷한 질문을 반복한다. '엄마는 나 키울 때 안 힘들었냐고' 그러면 엄마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항상 비슷한 답변을 해주신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지..." 엄마는 무엇이 항상 그렇게 미안할까?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했다.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 마음이 어떤지 조금은 알 것 같지만, 아직도 '엄마 마음'은 통 모르겠다. 하긴, 아이에게 자기 몸을 내어주었던 엄마의 마음을, 아빠라고 한들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제 복직을 하면 주말 남편, 주말 아빠로서의 삶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함께'하는 육아를 하고 싶지만, '돕는' 육아를 해야만 한다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내를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그 마음'의 끝 언저리에라도 가닿지 않을까? 엄마의 마음이란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