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훈련 : 신체의 적응력을 개발ㆍ향상하기 위하여 환경 조건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하는 훈련.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아내, 아가와 함께 영종도로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P인 엄마는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면서 갑작스러운 여행 일정을 통보해 왔고, J인 아빠는 느닷없이 생긴 여행 일정으로 육아 라이프 역사상 가장 큰 긴장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가를 데리고 가까운 공원이나, 카페, 음식점, 쇼핑몰 등에 다녀온 적은 많았지만,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나들이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가를 키우면서 '생전 처음 있는 일'을 꾸준히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저 쪼꼬미를 데리고 집을 떠나 하루를 보낸다고?...' 출발하기 전부터 머릿속이 어질어질한 기분이었다.
곧 다가오는 아가의 돌잔치 이후,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계획 중이었다. 아마 제주도 여행을 처음 생각했을 때만 해도 아가를 데리고 외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밥이야 대충 사 먹는 것이고, 옷이나 몇 가지 챙겨서 룰루랄라 다녀오면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정말 초보 아빠였구나 싶다.
어쩌면 잘 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첫 여행'의 순간을 맞닥뜨려야 할 테니, 아내의 결단력 덕분에 미리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며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제주도 여행은 일단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야 하고 여행 기간 내내 낯선 렌터카에 몸을 싣고 다녀야 하며 적어도 2박 3일 이상의 긴 일정을 소화해야 할 테니, 이참에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1박 2일 정도 짧은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긍정 회로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뭐랄까... 일종의 '전지훈련'이라고나 할까?
생각이 '전지훈련'이라는 단어에 이르자, 문득 10여 년 전 군 생활이 떠올랐다. 내가 몸담았던 해병대는 국가전략기동부대로서 유사시 최단 시간 내에 한반도 어디든 투입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부대였다. 덕분에 군 생활 내내 집 떠나 잠을 청해야 했던 일이 무척이나 많았다.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헬리콥터를 타면서(물론 이때는 조종석이 아니라 승객실에 타고)...
많은 전지훈련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훈련을 꼽자면, '경기도 연천'을 다녀온 훈련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말 모든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여건 상, 군부대가 훈련하는 곳은 대부분 특정 장소로 정해져 있다. 안전사고 발생의 위험도 있고, 대민피해나 민원 소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상급부대에서는 우리 부대를 콕 집어 '경기도 연천'으로 떠나는 전지훈련을 계획할 것은 지시했다. 경상북도 포항에서 경기도 연천까지 자주포 십여 문과 수십 대의 군용 차량, 그리고 삼백여 명의 이르는 병력들을 기차에 실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아찔하다. 당시 나야 일개 소대장(전포대장)이었으니 그저 병력들을 통솔하여 훈련 준비만 잘하면 그만이었지만, 참모부에서는 오고 가는 교통편을 협조하고, 병력들이 먹는 것, 자는 것, 씻는 것, 싸는 것? 등등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엄청 골치 아팠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느 부대에서도 해본 적이 없는 첫걸음이었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출발하기 전부터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훈련도 훈련이었지만, 부대를 떠나 낯선 곳에서 2주라는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 것인지 모두들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품은 어떻게 얼마나 챙겨야 하는지, 잠자리는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지, 하루에 한 번 씻을 수는 있는지, 누구 하나 조금의 단서도 얻지 못한 채 그저 발만 동동 구르기를 한 세월이었다.
타들어가는 우리 부대원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국방부 시계는 조금도 지체 없이 흐르고 흘러 결국 출발 당일이 되었다. 결전의 날이었지만 무엇 하나 완벽하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역시나 모두의 우려대로 자주포와 차량을 움직여 기차역에 이르는 과정에서부터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모든 병력이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부대와 기차역을 분주하게 오갔지만, 장비들을 기차에 탑재하는 데에만 한나절 이상이 걸렸다. 해가 지고 밤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장비 탑재를 마쳤고, 그제야 모든 병력들이 기차에 몸을 실으며 출발 준비를 끝냈다. 아직 훈련장으로 떠나지도 못했는데 훈련을 마무리한 것 같은 피곤함은 어쩔...?
그렇게 밤 10시에 포항을 출발한 기차는 밤새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다음 날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경기도 연천에 있는 어느 기차역에 도착하였다. 좌석 등받이도 눕힐 수 없는 열차에 앉아 무려 16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지만, 더욱 우리를 아찔하게 만든 것은 아직 훈련을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오마이 갓뜨!
간이 샤워장, 이동식 화장실, 수 십 여개의 텐트를 이어 붙인 나름의? 숙소 등등,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드문드문 떠오른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전투복, 흙바닥에서 쪼그려 앉아 먹었던 매 끼니, 어떻게 누워도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던 야전 침대 등등, 의식이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참 힘들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역시 '집 나가면 x고생이다'라는 말은 진리였다.
'진리'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진리였다. 군 생활 때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진리는 진리이니 말이다. 아가와 함께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아니 나서기 전부터 고생은 시작되었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날 때는 그렇게 짐이 단출할 수가 없었는데, 아가와 함께 단 하루를 밖에서 지내는 것인데도 왜 이렇게 챙겨야 할 게 많은지. 커다란 캐리어에 아가의 짐을 한가득 때려 넣고도 짐 가방이 더 필요할 정도였다. '너... 이렇게 쪼꼬미인데 필요한 게 이렇게 많단 말이니!'
아가와 함께한 1박 2일의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가의 낮잠 타임을 맞추려고 발을 동동 굴렀던 시간, 빽빽 소리를 지르는 아가 때문에 진땀을 빼며 저녁을 먹었던 시간, 아가가 밤중에 자면서 침대 가드 밖으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잠들었던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여행하는 내내 고되기만 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리조트 천장을 가득 채우며 등장한 고래를 향해 눈이 휘둥그레진 아가를 보았을 때, 낯선 잠자리에서도 금세 잠들어 새근새근 숨을 내쉬는 아가를 바라보았을 때, 한 손에는 바나나를 한 움큼 들고 다른 손에는 사과 조각을 잡은 채 세상 행복해하는 아가를 바라보았을 때, '첫 여행'의 참 맛을 느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역시 집 나가면 x고생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단 하루 집을 떠났을 뿐인데 생각보다 후유증은 진했다. 분명 하루였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쌓인 아가의 빨랫감, 설거짓거리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 전 어지럽게 늘어놓은 집 안의 잡동사니들까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정리를 마치고 나니 벌써 주말 끝. 길었던 전지훈련에서 돌아온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출근을 해야 했던 십여 년 전 나의 군 생활과 다른 게 전혀 없구나 싶었다. 띠용용...
다음 달 제주도 여행은 2박 3일인데... 잘할 수 있겠지? 한 번 훈련했으니까?
그전에 일단 이번 주 육아 라이프부터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