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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May 20. 2024

엄마는 충전 중

출처 : '전기차 충전은 이렇게' | 연합뉴스 (yna.co.kr)



  직장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야근과 회식. 아내도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야근과 회식을 차마 피해 갈 수 없다. 나 역시 직장인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아내의 늦은 귀가를 십분 이해하지만, 아가는... 아직 아닌가 보다. 아가는 자신이 잠들 시간이 되었음에도 옆에 누워 있지 않은 엄마를 목놓아 부르는 걸 보니, 늦게 귀가하는 엄마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내의 야근과 회식이 갑작스럽게 계획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가에게는 이러나저러나 매한가지겠지만?...) 아내는 적어도 하루나 이틀 전에는 야근이나 회식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물론 아내의 늦은 귀가를 알고 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나의 육퇴시간이 조금 늦어진다는 것과 "음마!"를 부르짖으며 찡얼거리는 아가를 아주아주 힘겹게 재워야 한다는... 아주 사소한?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것 정도?


  아내가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나는 아침부터 '에너지 절약' 모드로 육아 모드의 세팅을 바꾼다. 될 수 있으면 덜 어지르고, 설거짓거리도 적게 만들면서, 미리미리 집안일을 해치우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저녁시간에 아가를 재운 뒤 방을 빠져나오며 한숨이 덜 나올 수 있다. 힘겹게 아가를 재우고 나왔는데 해야 할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아내는 퇴근이 늦을 것으로 예정된 당일 아침이면, 출근 전까지 평소보다 더욱 아가를 끌어안고 시간을 보낸다. 아가를 깨우고, 아가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가와 놀아주다가, 때가 되면 밥을 먹여주며 아가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 임박해서야 나에게 아가를 넘긴 후, 부리나케 출근 준비를 마치고서는 아빠와 아가의 배웅을 받으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아내는 아가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침잠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출근 준비를 하며 복닥복닥 거려도 아내의 수면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못할 정도로 아내의 아침잠은 '딥 슬림' 그 자체였다. 그랬던 아내였기에,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아가에게로 향해 가는 아내의 모습이 아직도 가끔은 낯설게 느껴진다. 역시 엄마는 위대한 것일까? 


  아내가 아침잠이 줄어든 것인지 아니면 아침잠을 억지로 이겨내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아침형 인간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조금 의아한 점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 아침형 인간은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나? 집에서 육아하고 있는 나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도 아가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 잠시 눈을 붙이며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늦게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셈인데... '저녁스러운? 아침형 인간'이라는 유형도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위대한 엄마형 인간'??  


  이따금씩 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일터에서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도 출근 전 아침, 퇴근 후 저녁 시간이면 아가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일하느라 피곤할 텐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해도, 아가와 더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하는 아내이다. 그런 아내를 떠올릴 때면, 나는 육아한답시고 괜히 힘든 척 엄살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엄살이 아닐 때가 더 많아요... 힘들어요. 흙흙...) 


  그날도 아내는 회식으로 늦은 귀가를 했다. 아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엉덩이를 한 번 붙이지도 않은 채 아가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식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도 아내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조심스레 아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은 어두컴컴한 상태였고, 아내는 침대 위에서 아가와 나란히 누운 채 눈을 감고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자는 거니?" 작은 목소리로 아내에게 물었다. 


  "아니, 충전 중이야." 


  아내의 뜻밖의 대답에 괜스레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육아의 시간을 '사랑'과 '행복', '기쁨'의 순간으로 생각하기보다, '일', '노동', '의무'라는 짐으로 여긴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역시... 나는 아직도 초보 아빠로구먼...!'


  그 사건 이후, 가끔씩 나도 아내가 했던 것처럼 '충전'이라는 것을 해보고 있다. 세상 평화롭게 곤히 자고 있는 아가의 옆에 나란히 누워, 새근새근 거리는 아가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혼돈의 카오스'로 가득했던 육아 전투의 현장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평화와 안식이 깃든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면서 말이다.


  물론... 아가가 깨면, 아빠는 언제 충전을 했냐는 듯 금세 '방전'이 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마에게 탑재된 배터리와 아빠에게 탑재된 배터리는 퀄리티 자체가 많이 다른 것이 아닌가 싶다. 

  아가 입을 빌려 아빠가 외쳐본다.


  "엄마... 그래서 언제 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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