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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Apr 17. 2023

하얗게 질려버린

적어도 눈이 떠 있는 상태에서만큼은 흰 백지를 생각한다. 하얀 걱정과 하얀 계획들로 채워 넣은 하루를 상상한다. 어느 순간부턴 꿈속에서조차 난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있다. 부담감과 책임감, 또 그에 부응하는 완벽한 성격과 그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내 정신은 점차 피폐해져가고 있다. 휴일에도 내 의도는 철저히 배제된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강박감에 물 머금은 스펀지처럼 난 무거워졌다. 그 물은 도로 어디엔가 고여 있는 썩은 빗물 혹은 눈과 매연이 뒤섞인 회색빛 눈 무더기 정도였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창밖은 대부분 어스름해져있다. 아직 덜 깬 정신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올 때면 그만큼 무료함도 자리를 잡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걷고 누군가는 운전을 하며 누군가는 잠에 들 것이다. 하루 24시간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제각기 다른 삶을 사는데 정작 왜 난 나의 다름과 이 하얀 시간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연락은 주고받지만 커지지 않는 감정과 그 관계에 대해, 그리고 어제 만난 친구의 말과의 공통점은 난 아직 배고프지 않다는 점. 그렇지만 허기가 진 삶이 무조건 고달프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배부른 몸에도 항상 허기진 정신은 따라오는 법이지 않나. 요즈음 혼자 보는 밤하늘은 내겐 불안감과 같다. 적막하고 고요한 주변의 소리들은 현재의 나를 빗대어 말하기도, 반대로 내 머릿속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띠기도 한다. 출발점도 도착지도 없는 길 위에서의 방황을, 그 허둥지둥하는 실루엣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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