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를 이루는 기억

<기억극장> 함희윤 감독 인터뷰

by 지연정반합

<기억극장>

제작연도: 2020

러닝타임: 5분 20초

각본, 연출, 애니메이션: 함희윤

음악: 김신


2021 Zagreb Animafest, 학생 경쟁, 크로아티아

2021 Anifilm , 학생 경쟁, 체코

2021 대구단편영화제, 일반경쟁, 한국

2021 Exis 서울국제실험영화제, 국내경쟁, 한국

2021 KuanDu International Animation Festival, 학생경쟁, 대만

2021 제10회 키예프 국제 단편 영화제(The 10th Kyiv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초청, 우크라이나

2021 PÖFF Shorts, 비경쟁, 에스토니아



일어나자마자 책상 앞에 앉아 스탑워치를 켜고, 쉬는 시간마다 멈춰둔다. 잠자리에 들기 전, 작업 총량을 확인했을 때, 10시간이 넘어가지 못하면 화가 난다는 작가 함희윤. 저는 고3 수험생 시절에도 이렇게는 못했던 것 같은데요... 한 인간을 이루는 기억의 생성과 변모, 파괴와 이동을 진지하게 탐구하여, 유머있게 풀어낸 그의 작업 <기억 극장>.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말로, 자세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연필로,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함희윤이라고 합니다. 학부는 판화를 전공 했는데 졸업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그 연으로 지금은 석사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Q. 기획의도가 무엇인지.


A. <기억극장>은 기억이라는 개념을 다룬 작업입니다. 당시, 학부 졸업할 때쯤에 저에게 가장 큰 화두가 '인간의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주제였습니다. 꽤 거창했는데요, 인간의 존재를 가장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기억이라는 장치라 생각했고, 그래서 기억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보자 했습니다. 기억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보다는 기억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루는 작업을 했습니다.



Q. 작품 얘기를 더 자세히 해봅시다. 음악이 강렬합니다. 공포심도 들었고 어떤 부분은 통통 튀는 귀여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코미디적이기도, 아이러니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음악 작업을 어떻게 하셨는지.


A. 음악감독은 친구 소개로 알게 됐습니다. 당시에 음악감독님이 해외에 계셨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진행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콘티를 짜서 보내드렸어요. 콘티에 맞춰서 음악을 만들어 주셨는데, 완성된 음악이 기대했던 방향과는 달랐지만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콘티를 다 지우고, 음악에 맞춰서 바로바로 완성해 나갔습니다.


공포심이랑 유머러스함은 음악감독님 특유의 개성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음악감독님과 제가 잘 맞았던 부분이기도 해요. 제가 그림을 그리면 (그게 귀여운 형태일지라도) 사람들한테서 음산한 면이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했어요. 그런 점에 있어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이였음에도 굉장히 합이 좋게 나왔던 것 같습니다.



Q. 그림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고전 영화의 느낌이 납니다. 매끄럽지만은 않은 움직임과 분리, 단절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동시에, 연결되고 선형적인, 집단적인 이미지도 함께 등장합니다.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반복해서 나타남에도, 충돌하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이건 개인적 해석이고,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이미지에 더 집중하셨는지.


A. 작업하면서 그런 감상은 처음 들어봐서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고민을 해봤습니다. 단절되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일단 그림이 조금 거칠어요. 보통 애니메이션의 프레임 수는 24프레임이 기본인데 저는 끊기는 느낌이 좀 더 재밌어서 의도적으로 10프레임으로 제작했어요. 또, 영화의 공간이 두 부분으로 분절이 되잖아요. 하나는 어떤 방같은 공간, 하나는 물고기들이 왔다갔다하는 극장. 그 두 공간이 개념적으로는 연결이 되어 있지만, 서사적으로, 형식적으로는 떨어져있어서 분리된 느낌을 받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성됐다가 왜곡됐다가 먹혀 없어지거나하면서 극장 위를 걸어다니는 물고기들은 기억의 개체들입니다. 제가 분장실이라고 표현하는 방의 공간은 한 개인의 자화상이라 보면 됩니다. 기억들이 모여서 개개인 주체를 이룬다라는 것을 개념적으로 연결하려고 두 가지 공간을 교차 편집했어요. 때문에 분절적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떨어져 있지만은 않다는 느낌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이미지에 대해서 더 얘기하자면, 분장실에 있는 이미지를 제일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 중에서도 분장실에서 거의 마지막 부분에 비둘기가 천장 위를 걷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 장면을 그리고 나서는... 설레서 밤을 거의 샜어요.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 장면 하나때문에 애니메이션으로 석사까지 오게된 거예요.



Q. 흥미롭습니다. 저도 비둘기 장면이 기억에 남았어요. 새롭고, 감탄도 나오는 장면이었습니다.


A. <기억극장>에서 다른 장면 다 버리더라도, 그 장면 하나만 있어도 제게 크게 의미가 있어요. 그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을 때 묘한 느낌을 받았는데 미세한 움직임과 사운드까지 넣으니까 더 묘해진 느낌을 받았어요. 이건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그 장면이 저에게 ‘시간성'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 번 반문 하게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시간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거든요. 고민의 출발점이 그 장면이었습니다.



Q.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지.


A. 대체로 모든 창작물들로부터 영감을 얻는 편입니다. 창작자가 의도한 대로 영감을 얻기 보다는, 분명히 한 작품에서 하나 이상의 이상한 부분들이 있거든요. 말도 안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말하기가 애매하긴 한데... 그런 부분들이 많은 자극이 됩니다. 영화볼 때도 생각을 계속해요. 영화는 그래도 강제적으로 시간이 흐르니까 어쩔수 없이 따라가야 돼서 집중을 하기는 하는데, 책은 거의 한 줄 읽고 십 분 생각하고, 한 줄 읽고 십 분 생각하고. (웃음) 읽는 속도가 느립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가면서 거기서 많이 얻어요. 또, 그 생각을 바탕으로 일기나 글을 써서 한 번 더 정리를 하고요.



Q. 가장 재미있게 작업한 장면과 가장 어려웠던 장면.


A. 비둘기 장면의 쾌감이, 엄청 짜릿했고요.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물고기들이 모여서 합창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혼이 올라가는 장면. 그림 자체는 어렵지 않았는데, 오래된 맥북으로 작업을 해서 컴퓨터가 감당을 못하더라고요. 편집하다 날아갈까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나머지 그림 그리는 건, 힘들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약간 망각된 상태여서... 할만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녹화했던 것을 보면, 스탑워치 눌러 놓고 작업을 하는데 하루에 12-14시간 정도는 채웠어요. 한 5개월도 안 걸려서 작업을 했고 작화지는 4천 장이상을 사용했어요. 양으로 치면 많지만 어려운 스킬이 필요하지는 않았던 작업이었습니다. 액션이 있다거나, 복잡한 그림도 아니고, 걷는 게 최고의 액션인 수준이어서 그림 자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Q. 영화제 상영 때의 소감은.


A. 졸업전시 이후로 누군가에게 이렇게 크게, 공식적으로 보여주는건 자그레브에서 처음이었어요. 되게 떨렸어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내 작업이 저렇게 큰 데에서 틀어진다고?'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박수를 쳐준다는 게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런 부분에선 재미있었고, 전달이 됐는지 안 됐는지는 사실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와서 봐준 분들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되게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Q. 앞으로의 작품 계획과 작가로서의 목표.


A.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연필 수작업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기억극장>은 미술과 영화의 애매한 경계에 서있어요. 미술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이긴 한데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을 들게 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형식은 미술인데 내용적으로 좀 더 시네마적인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서사가 뚜렷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는 파악이 될 정도로. 그렇다고 캐릭터가 너무 뚜렷하고 기승전결이 있는 작업에는 그닥 흥미가 없어서, 영화쪽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미술과 애니메이션과 영화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에 서 있고 싶습니다. 그리고 장편 애니를 하나 만드는게 목표인데, 잘 모르겠어요. 욕심은 그래요.



Q. 앞으로도 작업은 혼자서 하실 예정인지.


A. 제 그림이 밀도가 높은 편이라 다른 사람과 작업을 한다면 합을 맞춰 봐야 할 것 같아요. 아직은 아마추어라서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시키는 건 심리적으로 힘들게 느껴집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혼자 해보고, 너무 비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 팀을 꾸리거나 할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