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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wa Jun 30. 2024

살아서도 죽어서도 집이 필요한건가

<비와의 나들이>



내가 좋아하는 아지사이 (수국 )공원에 가려고 전철을 탔다. 문득 그 주변에 큰 묘지공원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주 산책했던 공원이라는데 ... 궁금증이 생겼다. 왠지 묘지가 있지만 아름다운 공원일 것 같았다. 엄청나게 큰 묘지라서 국립묘지정도의 규모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한국에 있을때는 동작에 있는 국립묘지에 무슨 행사차 한번 가본적이 있는데..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06년도에 뉴질랜드를 혼자 여행할때 나는 주로 많이 걸었는데 , 걷다가 꽃과 나무가  너무 예쁘게 잘꾸며져 있는 공원이 있어서 '와 정말 이쁘네. 여기는 무슨 공원이지? '라며 들어갔다가 묘지공원이라는 것을 알고 갑자기 머리가 쭈뼛서면서 더이상 예쁘게 느껴지지 않고 묘한 기분이 들어서 서둘러 뒤돌아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 때만 해도 아직 죽음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아직 젊고 생기가 넘치던 때였다.

그런데 지금은 제발로 묘지공원을 보고싶어 찾아 들어가다니... 세월이 많이 흘렀나보다.


그렇긴 하다. 내 머리에는 흰머리가 드글거리고,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죽을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도 생각하고, 죽을 때 어떤 모습일까. 죽을 때까지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라던지, 죽기전까지 하고 싶은 거, 내가 이 세상에 없어졌을때의 상황과 감각을 상상으로 느껴보기도 한다. 먼저 간 엄마를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는 만날수 있을까?

내가 오라버니라고 부르던 선생님이 왜  50중반에죽음과 영혼에 관심을 가지셨는지 이제는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나는 전철에서 내려 묘지로 향했다.

도쿄 세이부신주꾸선 타고  코다이라역에서 내리면 바로 5분정도 걸린다.

가는 길에는 수석 가게, 꽃가게, 비석을 만드는 가게가 몇 군데 있다.

공원 입구부터 벌써 꽤 넓을 느낌이 전해져 온다.

입구에서 부터 쭉 걸어들어가면 블럭이 아주 정리가 잘되어있다.

 

좀 기대를 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묘지인데 그래도 공 좀 들였을 것 같다.

묘지가 보인다. 아니 걸어도 걸어도 묘지밖에 안보인다. 하기사 묘지가 근본적인 목적이긴 하다만 그래도 너무 묘지만 있는 기분이다.


그냥 단순하게, 끝없이 묘지 뿐이다.

음... 난 뭘 기대한 걸까.


근데 문득 수많은 묘지를 보며 걷다가 느꼈다.

이 집은 관리가 잘 되는군.

이 집은 언제 다녀갔는지 알수가 없네.

풀과 나무가 무성하다.

이곳은 더이상 아무도 올수 없는상황이 아닐까

이 집은 잘 사는 집인가 보네.  묘지도 으리으리하다.

막 들어온듯한 반짝이는 새 묘지
특이하게 십자가가 있는 묘지
풀이 무성한 묘지


이런 단순하고 심픞한 묘지는 잘 없다.

글을 쓸 생각이 없었으므로 남의 묘지를 구경삼아 막 찍기가 미안해서 많이 찍지 않았는데 좀 아쉽다.

묘지 한 칸의 넓이가 그 집의 재력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정해진 구역안에 각종 장식을 한다. 비석, 탑, 관음상까지 세워 놓은것도 보았다. 조경으로 심어놓은 나무, 수석 장식,  헌화대 등등 재량껏 꾸민다.  그리고 묘지 뒤쪽에 길고 얇은 나무 장대에 날짜를 써서 꽂아두는 곳이 있는데 이 나무장대가 많을 수록 후손이 많이 보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죽어서도 집이 필요한거야?

부자는 죽어도 큰 집에 산다는 건가?

나는 평소에 '화장해서 뿌려줘'라고 하니까 관계는 없을 것 같다만..

이곳은 수목장도 있다. 아무리 나무라지만 그래도 관리를 해줘야 한다. 산에 있는 나무가 아닌 이상.


계속 걸었다. 다리를 쉬고 싶었다. 앉을 곳이란 길옆에 심플한 벤치 몇 개가 가물에 콩나듯  띄엄띄엄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늘 아래 있는 벤치가 있어 잠시 앉아서 음료수 한모금 마셨다.


이제는 나가야겠다.

 입구로 향해 걸었다. 메마른 시멘트 바닥의 질감이 지금  내 감성과 일치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기를 산책하며 어떤 생각과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내가 가려던 아지사이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근처 산책로를 지나가는데

좋은 향기가 난다.

눈이 화려하게 유혹당한다.

나도 모르게 이끌려 발을 옮겨 들어갔다.

형형색깔 장미꽃이다.!


아 근데 이건?


여기는 꽃 묘지네?!

예쁜 묘지다. . .


오늘 끝물인 수국 공원에 산책하러 갔다가, 이색적인 구경 잘하고 우동도 먹고,  많이 걷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늘 묘지를 구경한 이유는 뭐 죽고싶어서? 이런건 아닙니다. 오히려 전 잘 살고 싶어요. 죽음을 생각하면 혹시라도 더 잘 살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좀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생각은 앞으로 종종할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 있으면 가르침주셔요.


<비와의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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